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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노무현과 반기문

입력
2017.0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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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22일. 선교사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참수된 채 발견돼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시점이 묘했다. 이라크 파병반대 여론이 들끓고 직전에 헌재의 탄핵 소추 기각으로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부분 개각을 고려하던 와중이었다. 언론은 반기문 외교부장관 경질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그러나 노무현은 “누가 그 자리 있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반 장관은 놔두고 다른 장관들을 교체했다.

▦ 반 장관의 야심이 드러난 건 그 얼마 후다. 2006년 말로 끝나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후임에 아시아계 당선이 유력하니 한국도 후보를 낼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반 장관이 제출했는데 1, 2순위는 외교장관 출신이고 3순위는 반 장관 본인이었다 (이종석 ‘칼날 위의 평화’). 하지만 일찌감치 사무총장 출마 의지를 밝힌 중앙일보 사주 홍석현이 주미대사로 내정되면서 후보 레이스에서 앞서나갔다. 물거품이 되는 듯했던 반기문의 꿈은 홍 대사가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물러나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노무현은 친미파인 반기문이 사무총장이 되면 참여정부의 ‘균형외교’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해 그를 선택했다.

▦ 노무현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에 헌신적이었다. 동원호 피랍자 석방지연과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등으로 외교ㆍ안보라인 문책론이 빗발쳤지만 “한국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것은 멋진 일 아니냐. 욕은 내가 먹는다”며 끝까지 감쌌다. 한국 대통령이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는 15개국을 다니며 반기문 지지를 호소했다. 심지어 자국에서도 후보를 낸 스리랑카 총리에게 “그래도 기회가 되면 도와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고 최광웅 전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은 ‘노무현의 사람들’에 썼다.

▦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건 반 총장 취임 2년이 좀 지난 시기였다. 그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유족들의 간곡한 요청에도 영상ㆍ서면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 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봉하마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참여정부 쪽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2011년 말에 묘소를 찾았으나 “개인휴가 중의 비공식 일정이므로 언론에 비공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밝혔다. 노무현정부 사람들에게 ‘인간 반기문’은 ‘배신의 아이콘’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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