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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나의 ‘황우석 트라우마’

입력
2017.08.1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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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서울지검에 소환되는 황우석(가운데)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6년 서울지검에 소환되는 황우석(가운데)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0년 어느 날로 기억된다. 물리학과에서 황우석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하게 한 적이 있다. 박사 학위를 받기 직전인 내게 황우석 교수의 강연은 깊은 감명을 남겼다. 한국에 이런 과학자도 있구나 싶어서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5년 뒤 MBC의 ‘PD수첩’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며 검증하겠다고 나섰을 때 나는 누구보다 한국의 위대한 과학자를 지켜야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내 생각이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PD수첩’ 제작진이 취재일지를 공개하면서부터였다. 결정적으로, 줄기세포의 2차 DNA 검증을 거부하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황우석 연구진의 대응방식이 ‘PD수첩’ 제작진의 취재방식보다 덜 과학적이었다. 그 해 12월 초, 나는 이런 생각들을 정리해서 어느 일간지에 보냈고 인터넷 판에 비중 있게 실렸다. 당시에는 여론의 99.9%가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고 있었다. 0.1%의 극소수에 속해 1,000배 가까운 사람들과 맞서는 느낌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대개는 내가 쓴 글의 조회수가 올라갈수록 보람과 기쁨도 함께 늘어가지만, 그날은 달랐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심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얼마지 않아 논문조작의 실체가 드러난 뒤에도 우리 사회의 ‘황우석 광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내부자들, 일선 과학자들, 언론인들은 그때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초를 겪었고 지금도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수습에 나섰더라면 이분들의 고통도 나의 사소한 아픔도, 그리고 사회 일각의 광기도 많이 진정됐을 것이다. 그 중에는 박기영 당시 정보과학기술보좌관도 포함된다.

황우석 교수는 대한민국 ‘제1호 최고과학자’였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원한 과학자가 황우석이었고, 그 핵심에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있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황우석 프로젝트는 상당부분이 정부차원의 프로젝트였다. 과학계의 김연아로 키워서 노벨상을 수상하도록 지원하자는 포부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노력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의 돈으로 전폭적으로 지원한 과학연구가 결과적으로 온 국민을 혼란과 충격에 빠뜨렸다면 누군가는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을 지고 사태를 수습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기영 보좌관은 청와대를 떠나는 것으로 모든 책임을 대신했다. 그 흔한 공식사과는 무려 11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된 직후였다. 쏟아지는 비판을 잠깐 피하기 위한 술책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법도 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홀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을 때, 나는 광주 시민들이 느꼈을 감정의 밑바닥은 분노라기보다 공포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에 편승한 ‘폭도’ 논란도 가중되는 마당이라면, 국가가 다시 우리를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떨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기영 교수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화려하게 귀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첫 느낌은 바로 그 두려움이었다. 황우석 사건은 과학자에겐 생명과도 같은 학문적 양심을 무참히 짓밟은 참극이었다. 박기영의 복귀는 그 참극에 면죄부를 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었다. 12년 전 내 작은 상처도 조금씩 쑤시는데, 이른바 ‘병술 40적’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본부장직 사퇴 후 박기영 교수는 자신이 마녀사냥을 당했다고 항변했지만, 지난 세월 동안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행해진 진짜 마녀사냥에 대해서는 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 특히 과학기술인들이 박기영 교수의 귀환을 반대했던 이유는 그가 조작된 논문에 무임승차로 이름을 올렸고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황우석 교수로부터 거액의 연구비를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이런 사건들 자체로도 공직에 나서거나 학계에 남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들로 이미 황우석 교수와 특수한 관계가 돼 버린 사람이 계속 공직에서 그와 관련된 정책을 아무런 견제나 검증 없이 추진해 왔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메커니즘이 없었거나 작동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참여정부의 이런 허점을 얼마나 파악하고 대비를 했을까?

박기영 인사파동을 두고 청와대에서는 비판여론을 예상했으나 반발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한다. 이 정도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니 이 정도의 반발이 아니었다면 박기영 교수는 과기혁신본부장직을 계속 수행했을 것이고, 나는 5년 동안 내 작은 상처를 다시 느끼고 살았을 것이다. 과학기술계의 상식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가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반발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나의 ‘황우석 트라우마’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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