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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걱정부자] 美 1982년 타이레놀 독극물 사태땐 제약사 “복용 말라” 3100만통 회수

입력
2017.07.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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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런던 지하철ㆍ버스 테러

런던 경찰청장이 비상체계 총가동

대형 재난으로 번질 위기 막아

사회적 신뢰 자산이 큰 힘으로

현지경찰이 2005년 런던 지하철, 버스 폭탄 테러 당시 폭발로 부서진 전철 객차를 수습하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현지경찰이 2005년 런던 지하철, 버스 폭탄 테러 당시 폭발로 부서진 전철 객차를 수습하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재난 수준의 위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선진국에선 기업과 정부가 적극적인 대처로 ‘위기 관리’의 전범을 만든 사례들이 있다.

미국 소비재 및 의약품 생산업체 존슨앤존슨이 1982년 ‘타이레놀 위기’ 때 취한 신속한 조치는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전후, 살균제 제조업체들이 보인 태도와는 대조적이다. 1982년 9월 미국 시카고의 한 마을에서 감기를 앓던 12세 소녀가 감기약을 복용하고 갑작스레 숨졌다. 이어 며칠 사이 시카고 일대에서 7명이 급사했다. 조사 결과 이들 사망자 8명이 모두 숨지기 전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했으며 이 캡슐에 치명적 독극물이 투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존슨앤존슨의 시장 점유율은 35%에서 7%로 급락했고, 충격과 불안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피해자들이 복용한 타이레놀은 서로 다른 공장에서 제조돼 제조단계에서 독극물이 포함됐을 가능성은 없었지만, 사측은 이를 해명이나 변명하기 보단 사건의 진상이 다 드러나기도 전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선제 조치에 나섰다. 우선 제품 광고를 전면 중단했고, 지역경찰과 함께 시민들에게 “즉시 타이레놀 캡슐 복용을 중단하라”고 당부했다. 언론을 통해 현재까지의 경과를 여과 없이 발표했으며, 범인 검거를 위해 10만 달러의 현상금도 내걸었다. 심지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누군가 소매유통단계에서 타이레놀에 의도적으로 청산가리를 투입한 만큼 시카고 지역의 타이레놀만 거둬들여도 좋다”고 권고했지만, 존슨앤존슨은 전국에서 타이레놀 3,100만통을 즉각 수거했다. 이미 판매된 캡슐은 정제형 알약으로 교환해 주겠다는 광고를 내보냈으며, 50만통이 넘는 관련전보를 병원, 약국, 유통업체에 보냈다. 이 과정에서 75개의 독극물 함유 타이레놀이 수거됐다. 회장을 포함한 7인의 위기관리위원회를 만들고 피해자 지원과 인명피해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이런 과감한 조치가 가능했다.

일단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는, 앞으로도 캡슐에 이물질이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새로운 포장의 개발에 나섰다. 신속하고 양심적으로 대응한 존슨앤존슨은 단기적으론 손해를 봤겠지만 기업과 약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시장 점유율은 1986년 다시 35%까지 상승했다.

일본 산텐제약이 2000년 발생한 독극물 협박 사건에 대처한 방법도 이와 닮았다. 2000년 6월 “2,000만엔을 보내지 않으면 벤젠을 넣은 안약을 살포하겠다”는 협박소포를 받은 당일, 즉시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협박 사실을 공개하고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제품을 전량 회수하겠다”고 밝힌 것. ‘동태를 더 지켜보자’거나, ‘협박범이 요구하는 대로 돈을 주고 조용히 해결하자’는 등의 의견도 있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안전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신속하고 솔직한 선제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산텐제약은 3억 엔에 이르는 손실을 봤지만, 인명피해를 막고 협박범을 검거했으며 소비자들의 전화와 이메일로 쏟아지는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대형 사고발생 시 정부와 시민, 언론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를 보여 주는 사건으로는 ‘2005년 런던 지하철, 버스 폭탄 테러’가 있다. 런던 중심부 4곳에서 지하철, 버스를 대상으로 발생한 동시다발적 연쇄 폭탄테러는 자칫 교통 시스템 전체를 아비규환으로 만드는 대형재난으로 번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방정부 특히 런던경찰이 중심이 돼 바로 지하철, 버스의 운행을 일절 중단하고 런던 병원 전역에도 구급 구조상황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통보했다.

사건 발생 불과 몇분 만에 비상구조 체계가 총 가동됐으며, 전문 의료진이 현장에 파견됐다. 런던경찰청장이 지휘관이 된 위기관리기구 즉 골드조정그룹이 지휘관이 돼 언론, 교통, 군대, 보건, 소방대, 중앙정부 연락을 총괄했다. 현장에선 청와대에 보고하느라 급급해하며 지휘를 기다리고, 정작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부인했던 세월호 참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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