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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군인 처벌’ 군형법, 또 다시 국회로 가다

입력
2017.05.2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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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관련 시민 단체 소속 관계자들과 국회의원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페이스북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관련 시민 단체 소속 관계자들과 국회의원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페이스북

지난 24일 육군 동성애자 군인 색출사건의 근거가 됐던 군형법 제92조의6을 삭제하는 내용의 군형법 일부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항문성교를 한 군인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회에서 이 내용으로 군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은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개정안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정의당에선 심상성 노회찬 추혜선 윤소하 이정미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선 진선미 권미혁 의원이, 무소속 김종훈, 윤종오 의원 등이 공동발의했다. 김종대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압박이 있는 곳에 찾아가 두 팔로 막아주는 것이 정치의 참다운 본령일 것입니다”라며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 수사에 대해 “바로 군 형법을 무기로 차별과 혐오를 합법으로 가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일부 종교단체 등 반대세력의 반발에 대한 우려로 군형법 개정안 발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 의원은 개정안 발의 하루 전인 23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그 동안 발의 의원 10명을 채우지 못해 석 달을 기다리다가 지난주에 가까스로 발의 숫자를 채우게 됐다”며 “여러 국회의원들이 심정적으로는 이 개정안을 지지하지만 종교단체의 반발을 의식해서 참여하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한편 25일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군형법 개정안 발의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리 알았으면 공동발의에라도 참여했을 텐데 미처 몰랐습니다. 적극 지지하고 저도 폐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지지의 뜻을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및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및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동성애자 군인 A대위 유죄선고… 같은 혐의로 재판 받을 군인 앞으로 수십명

한편 24일 오전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혐의로 육군 중앙수사단의 조사를 받은 A 대위는 육군 보통군사법원의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A대위는 지난 4월 전역을 약 일주일 앞두고 구속기소가 되면서 휴직 상태가 됐고, 항소하지 않으면 형이 확정돼 불명예 제대를 하게 될 처지에 놓였다. 군인권센터의 김형남 간사는 “항소를 하면 A대위는 2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휴직 상태가 되는데 언제 재판이 끝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인신분을 유지하면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항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A대위 뿐만 아니라 현재 같은 혐의로 군 검찰에 송치돼 재판을 앞두고 있는 군인들이 20여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지난 달 육군은 32명의 군인을 수사 중이라고 밝힌바 있다.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의 첫 사례였던 A대위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에는 4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으며 박주민 심기준 이철희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김종대 노회찬 심상정 윤소하 이정미 추혜선 정의당 의원, 무소속 윤종오 의원 등 12명의 국회의원도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동성애자 군인 A 대위 유죄 선고 규탄 긴급행동ㆍ정당연설회'에 3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발언을 듣고 있다. 박소영 기자
지난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동성애자 군인 A 대위 유죄 선고 규탄 긴급행동ㆍ정당연설회'에 3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발언을 듣고 있다. 박소영 기자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운동 10년… 다시 힘 모으겠다”

A대위 유죄 판결이 난 직후인 지난 2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A대위 유죄 판결을 규탄하는 긴급 집회가 열렸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주최로 열린 ‘동성애자 군인 A 대위 유죄 선고 규탄 긴급행동ㆍ정당연설회’에 모인 300여명의 시민들은 “국가가 성소수자를 결국 죄인으로 만들고 말았다”며 군형법 92조의6항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 이번 동성애자 군인 색출작전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해임을 주장했다.

이날 발언에 나선 녹색당 소수자특별위원회의 김조광수 감독은 “오늘 우리는 존재 자체로 징역형을 선고 받는 나라의 국민임을 통보 받았다”며 “촛불 혁명이 정권을 바꿨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국가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군사법원이 성소수자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대표는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운동이 사회에 알려진 지 딱 10년”이라며 “추행죄 폐지를 위해 2009년에 1,500명, 지난해에는 1만2,000명의 탄원서를 모아서 제출했다. 해결이 여전히 안되고는 있지만 (사회적 지지를 받아 다시 개정안이 발의된 것을 보며) 우리가 많은 걸음을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국내 성소수자들의 건강문제 연구인 ‘레인보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발언대에 올라 “오늘의 판결을 보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걱정이 들고,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처럼 느꼈을 10대 성소수자들이 어떤 마음을 갖게 될지 걱정된다”며 “아무리 고급스러운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다. 최근 혐오의 빗방울이 내리치는 느낌이고 이것이 금방 그칠 것 같지는 않는데, 비를 내리는 걸 막을 수 없다면 인간으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 비를 함께 맞는 것을 실천하도록 하겠다”고 성소수자들을 위로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지난 23일 인도네시아 아체주에서 두 남성이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83대의 공개 태형을 당하고 24일 대만에서 동성혼을 금지하는 민법에 대한 위헌판결이 내려져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 합법화의 길이 열린 사건이 언급되기도 했다. 주최측은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은 지금 인도네시아와 대만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라며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 운동이 10년간 진행됐고 다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 국방위원회까지 갈 길이 멀다. 우리가 국회의원들을 더 압박하고 지지해서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동성애자 군인 A 대위 유죄 선고 규탄 긴급행동ㆍ정당연설회'에 3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발언을 듣고 있다. 박소영 기자
지난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동성애자 군인 A 대위 유죄 선고 규탄 긴급행동ㆍ정당연설회'에 3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발언을 듣고 있다. 박소영 기자

문 대통령, 인권위 권고 수용률 강화 지시

인권단체들 “2011년 군형법92조의6 폐지 인권위 권고 즉각 수용해야”

한편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보수 정권 10년간 급격히 추락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에서 사문화된 인권위의 대통령 특별보고를 부활시키고 정부 부처에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일 것을 지시했다.

인권위는 그간 국민 기본권과 관련한 숱한 권고를 내 놓았는데, 강제성이 없다보니 일선 정부 부처는 권고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전부 수용과 일부 수용을 합친 권고 수용률은 박근혜 정부 들어 30% 아래로 떨어졌다.

인권위는 2011년 군형법 제92조의6를 폐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전국 56개 인권단체는 성명을 내고 “이명박 정부의 불수용으로 존치된 조항을 근거로, 최근 군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대위가 구속되는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새 정부는 2011년 인권위의 권고를 즉각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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