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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7.01.03 13:54
수정 : 2017.01.03 14:37

[김월회 칼럼] 주인(主人)

등록 : 2017.01.03 13:54
수정 : 2017.01.03 14:37

나는 내 행동의 주인인가. 지하철 환승 통로를 걷노라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물음이다. 내가 길을 알고 걷는 것인지, 놓인 길을 그저 따라 걷는 건지 자못 헷갈릴 때가 많아서다. 꼭 환승 통로를 걸을 때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하루를 살면서 말 그대로 ‘정처’ 없이 걷는 때가 지독히도 없기에, 불쑥불쑥 그런 물음과 마주치곤 한다.

알고 살아가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깔아놓은 행로를 따라 그저 살아지는 것인지, 섞갈림 속에 하루를 보내곤 한다. 천명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었건만 아직도 내 삶의 주인이 정녕 나인지, 여전한 의문이다.

내가 속한 사회는 어떠할까. 지금 우리 사회의 주인은 ‘우리’가 맞을까. 지난 두어달간 우리는 우리 사회의 주인임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런데 그간 우리 사회의 주인 행세를 해온 세력들, 정관계를 주름 잡는 친일과 독재의 후예들, 수구적 언론과 비민주적 재벌 등으로 대변되는 저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실은 돈이나 권력 등의 마름에 불과한 그들과 ‘참 주인’으로서 우리의 차이는 무엇이어야 할까.

그 중 하나는 자기 영혼에 백년을 품어내는 역량이다. 백년이란 통상 한 인간의 생존 기간을 넘어서는 시간이다. 따라서 그것을 품는다 함은 미래를 늘 염두에 둔다는 뜻이 된다. 이는 현재를 제어함으로써 미래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된다. 지금 삶에 백년을 품음으로써 우리는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주인이 되어간다는 얘기다.

혹 탁월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은 인륜을 능멸하고 법도를 부쉈음에도 호위호식하며 천수를 누리고, 그렇게 거머쥔 부와 권력을 대대손손 세습하며 일락을 누리는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며 절규했다. 2,000여년도 더 된, 저 옛날에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되는가. 틀렸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인공지능이 바둑 최고수를 압도하는 오늘날이건만, 사마천의 절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재를 지배한 ‘가진 자’들이 미래도 그들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자신들이 쥔 것을 잃지 않으려는 절실함이 있다. 그 절심함의 결과는 못나고 악하지만, 그 탓에 그들은 오늘을 살면서 늘 미래를 도모한다. 지금 가진 것을 미래에도 쥐고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은 때론 인륜도 저버리고 법질서도 무시해가며 미래를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조성해간다. 그들을 탁월하다고 할 수 없는 연유다. 다만 미래 품기의 위력은 이처럼 결코 사소하지 않다. 참 주인으로서 영혼에 백년을 품어야 하는 까닭이다.

둘째는 자기 목소리를 지닌다는 점이다. 주인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존재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남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닌다. 남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에 세상도 바꾼다. 중국 근대 사상가 루쉰은 이렇게 말한다. 노예는 아무나 붙잡고 고통을 호소하고자 할 뿐이고, 딱 그만큼의 능력을 지닐 따름이다.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위안이라도 받을라치면 그토록 사무쳤던 원한이 스르륵 풀려 행복해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다시 누군가를 찾아 하소연을 반복한다.(‘똑똑한 자와 바보와 노예’)

하소연하는 목소리로는 결국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노예의 목소리엔 타인은 차치하고 자신을 바꿀 힘조차 없었기에 그렇다. 주인의 목소리는 이와 정반대다. 삶터에서 또 광장과 거리에서 분출된 목소리가 미적대던 정치인을 움직여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듯이, 주인의 목소리는 실질적 변화를 추동해낸다. 그렇기에 주인은 값싼 동정이나 면피용 호의 따위에 기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을 당당하게 얘기한다. ‘촛불혁명’의 목소리가 대통령 퇴진에 그치지 않고 친일과 독재로 대변되는 구체제의 근본적 혁신을 지향하는 이유다.

셋째, 주인은 길을 놓아갈 줄 안다. “군자가 길을 감에 사흘 동안 먹지 못하게 되나 나아갈 길이 있으리니 주인이 말할 것이다.” ‘역경’ 명이(明夷)괘에 나오는 말이다. 명이괘는 밝음이 해를 입어 땅 속으로 숨은 형상으로 암울한 시대상을 상징한다. 뜻있는 군자들은 너나없이 고초를 겪게 되는 어두운 시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주인은 촛불로 모여 어둠을 거둬내듯, 흑암의 시대서도 밝음의 길을 놓아간다.

인간다운 삶, 공정한 사회, 평화로운 국가 등 주인으로서 지킬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놓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길을 튼실하게 닦아간다.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수고롭고 버거우며 때론 귀찮기도 한 까닭이다. 그렇다고 주인 되기를 등한히 하면 황폐된 길에서 마름들이 주인인 양 다시 군림할 것이다.

1세기경 허신이란 학자는 “주(主)는 등잔의 불꽃이다”고 풀이했다. 이를 청대 학자 단옥재는 “그 형상은 사뭇 작지만 온 방을 밝히 비춘다”고 부연했다. 이것이 참 주인이 발하는 밝음이다. 정유년 내내 온 강토에서 그 밝음이 쇠하지 않고 빛나기를 소망해본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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