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고 추운 한국의 겨울은 가수, 성악가, 뮤지컬배우 같은 ‘목 쓰는’ 아티스트들에게 최악의 날씨로 통한다. 온습도가 조절되는 실내공연장이라고 노래하기 녹록한 건 아니다. 여름 평균 공연장 온습도는 23~24도 55~60%, 겨울은 이보다 낮은 21~22도 40~50%(서울 예술의전당 기준)로 겨울철 평균 습도가 낮은데다 관객들이 주로 입고 오는 니트나 털 코트 등 먼지가 많이 날리는 옷은 공연 중 기침 대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는 독감, 감기가 기승을 부린다.
뮤지컬 배우와 그들의 주치의에게 겨울철 ‘꿀성대’ 만드는 비법을 물었다. 물과 목도리는 필수, 창법 전환은 선택이었다.
꿀성대 만들기, 끝과 시작 물&잠
뮤지컬 배우들은 목관리 첫째 비법으로 약속이나 한 듯 ‘물 많이 마시기’를 꼽았다. 12월 ‘보디가드’로 뮤지컬에 첫 도전하는 가수 양파는 “노래하기 3시간 전부터 마시는 물이 성대까지 도달한다. 물을 늘 많이 마시려고 노력하고, 노래하는 날에는 최대한 말을 삼가, 목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추나 생강 계피 달인 물”(장은아), “오미자차”(강홍석), “영지버섯차”(정선아) 등 목에 좋다는 각종 차도 배우들이 자주 찾는 필수품. 체질에 따라 목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달고 쌉싸름한 맛이 물 자체를 많이 마시게 하는 역할을 한다.
바리톤 공병우씨는 “성악가들에게 치명적인 병은 목감기보다 몸살감기”라고 밝힌 적이 있다. “노래 부를 때 상반신 모든 근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꿀성대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체력 관리가 관건이라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수 출신의 뮤지컬 배우들은 꿀성대 비법으로 “숙면”을 꼽았다. 뮤지컬 ‘아이다’에서 암네리스 역을 맡은 아이비는 “잠이 최고의 보약이다. (공연을 앞두고는)하루 9시간 이상 숙면을 취한다”고 답했고, 12월 ‘보디가드’로 뮤지컬 데뷔하는 손승연 역시 “목이 칼칼한 날이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 9, 10시간 이상 잔다”고 말했다.
겨울철에는 가습기와 스카프가 필수품으로 추가된다. 최근 ‘킹키부츠’를 끝낸 배우 강홍석은 “잠들기 전 가습기 2대를 항상 틀어 놓는다”며 “겨울에는 추워도 히터를 안 튼다. 목이 쉽게 건조해지기 때문에 차 안에서 히터를 거의 안 트는 편”이라고 말했다. 정선아는 “가습기를 계속 틀고 집에 있는 수건은 다 물에 적셔서 널어놓고 잔다”며 “찬바람에 목이 노출되지 않게 목 스카프를 반드시 한다”고 말했다. “잘 때 목에 면 스카프를 한다”는 양파는 겨울이 되면 “매일 자기 전 식염수로 비강을 세척한다”고 비법을 소개했다.
목감기 걸리면 창법 바꾼다
경력 10년 전후의 프로 배우들의 평소 목 관리는 비슷하지만 목감기에 대처하는 자세는 제각각이다. 우선 성대와 목을 비롯해 온몸의 근육을 푸는 유형이 있다. “목 풀릴 때까지 줄넘기”(강홍석)를 하거나, “러닝머신을 하거나 필라테스 레슨을 받아”(정선아) 최대한 몸에 긴장을 푸는 식이다. “무조건 병원 가서 의사의 진료에 따른다”(아이비, 양파)는 정석파도 있다.
일부는 창법을 바꾸기도 한다. 지난 겨울 ‘레베카’ 공연 당시 신종플루에 걸렸던 장은아는 “평소처럼 발성을 낼 순 없었다”며 “목에 문제가 생기면 평소 마시는 차나 물의 섭취를 2, 3배 늘리고 비타민이나 아미노산 등의 수액을 매일 맞는다. 평소 내던 발성에서 다른 길로 발성을 바꿔 그때 나오는 소리 길로 부른다”고 말했다. 손승연 역시 감기에 걸리면 “최대한 성대에 무리가 가지 않게 비강을 많이 써서 넘기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이 말하는 꿀성대 비법
전문가들 역시 겨울철 꿀성대 유지 비법으로 스트레칭과 스카프를 꼽았다. 성대도 근육의 일종인 만큼 경직된 온몸 근육을 푸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김형태 예송이비인후과 원장은 “발성은 상반신 400개 근육을 움직여서 쓴다. 추우면 근육이 경직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소리를 내 성대가 다치게 된다”며 “겨울철에는 목근육을 따뜻하게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스카프 하는 게 제일 좋고 연습 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대 염증이 있어 기침을 동반하면 쉬는 것 밖에 답이 없다. 김 원장은 “간혹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경우도 있는데 배우 수명을 단축시키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재국 보아스이비인후과 원장은 “일주일에 2, 3번씩 병원을 찾는 뮤지컬 배우도 있다. 사전 예방 성격이 크고 목이 아프거나 감기 걸려 병원을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감기 걸리면)다음 공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약물 치료를 처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뮤지컬 배우들의 특징은 공연팀 한 배우가 아프면 줄줄이 아프다는 거다. 탈의실 같이 쓰고. 키스신도 있고 밀집도가 높다. 감기 걸리 딱 좋은 환경이라 독감에 걸리면 쉬는 게 정답”이라고 덧붙였다.
노력형 꿀성대는 박은태ㆍ유준상
‘꿀성대’는 발성과 공명, 두 과정을 통해 증명된다. 내뱉은 숨에 성대가 진동하면서 생기는 발성은 목의 인두강과 구강, 코의 비강에서 공명을 거쳐 밖으로 나온다. 발성기관인 성대나 공명기관인 인두강, 구강, 비강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목소리가 변한다는 뜻이다. 이 중 목소리 고유의 특색을 결정하는 건 성대 진동으로 만들어지는 소리다.
김형태 원장은 “일반인의 경우 관리가 목소리의 70%를 차지하지만 가수, 성악가, 뮤지컬 배우 등 목을 전문으로 쓰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70%가 타고난다. 나머지 30%가 올바른 발성과 테크닉을 갖고 있느냐다”고 말했다. “10시간 노래 불러도 성대에 무리가 가지 않는 지구력 좋은 사람이 있다. 지구력이 좋지 않아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스윙 잘하는 골프 선수처럼 인두강에 무리가 가지 않게 성대와 혀를 움직이는 분도 있다.”
김 원장이 꼽는 타고난 꿀성대는 ‘오페라의 유령’으로 내한했던 브래드 리틀. 김 원장은 “고난도의 대표 곡들은 원 캐스트로 수년 간 반복해 부를 수 있다는 건 타고난 능력으로 봐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2, 3개월 단기 공연을 더블, 트리플 캐스팅으로 번갈아 무대에 서는 것은 관리로 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재국 원장은 홍광호, 정성화 배우를 타고난 꿀성대로 꼽았다. 원 캐스트로 공연을 소화할 만큼 지구력이 좋은데다 성대, 인두강 등이 다치지 않게 ‘힘 안 들이고 스윙’하는 발성법도 탁월하다는 설명이다.
전문가가 말하는 노력형 꿀성대는 박은태 배우다. 오 원장은 “(박은태 배우는)여러 코치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발성을 관리한다. 배역이 바뀌고 발성 변화가 있을 때마다 병원에서 항상 체크를 할 만큼 성실하다”고 말했다. 또 “유준상 배우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음역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철저한 노력형”이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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