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같은날 朴은 검찰, 崔는 법원… 40년 우정의 비극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같은날 朴은 검찰, 崔는 법원… 40년 우정의 비극

입력
2017.03.22 04:40
0 0

朴 조사 진행 중 崔 국정농단 공판

300m 거리 두고 피의자 피고인 돼

단순한 ‘말벗’ 아닌 동반자 관계

朴, 비선 감싸다 국가 혼란 이끌어

40년 인연의 말로는 참담했다.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의 피의자 신분으로 최순실씨는 피고인으로 각각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류효진 기자
40년 인연의 말로는 참담했다.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의 피의자 신분으로 최순실씨는 피고인으로 각각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류효진 기자

40년 지기의 비참한 하루였다.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가 각각 검찰청과 법원에 섰다. 최고 권력자와 비선실세의 위치가 아니라 국정농단 사건의 피의자와 피고인 신분이었다. 두 사람의 오래고 질긴 인연은 헌정질서 파괴와 국가적 분열이라는 결과만을 낳은 채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박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 1001호실에서 한창 오후 조사를 받고 있을 때쯤, 동쪽으로 불과 300m 떨어진 서울중앙지법 417호실에선 최씨가 흰 수의를 입고 법정에 모습을 나타냈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22번째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최씨는 애써 태연한 척 했다. 가끔 물을 들이키거나 변호인과 귓속말을 주고 받는 정도였다. 평소와 달리 공중에 시선을 둔 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도 포착됐지만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날 최씨 측 변호인은 “최씨가 박 전 대통령 검찰 소환조사 소식을 뉴스를 봐서 알고 있다”며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씨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이 결정된 지난 10일 법정에선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구치감에서 홀로 눈물을 쏟았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6월10일 한양대에서 열린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 주재 ‘새마음제전’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퍼스트 레이디로 새마음봉사단 총재였고, 최씨는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이었다. 언론에 공개된 당시 영상에는 박 전 대통령 곁에서 밝게 웃으며, 한시도 눈길을 떼지 않는 최씨의 앳된 모습이 담겨 있다. ‘잘못된 만남’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일가와의 인연은 그보다 수 년 정도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서거(74년)한 뒤인 75년 3월 최씨의 아버지 최태민과 청와대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인연이 이즈음부터 시작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박 전 대통령이 칩거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최씨가 독일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한 85년 둘은 재회했고,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르는 사이가 됐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최씨가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2006년 박 전 대통령이 지방선거 유세 때 ‘커터칼 테러’를 당했을 때도 최씨가 병원이나 삼성동 자택을 드나들며 필요한 일을 처리해줬다는 얘기도 나왔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단순한 ‘말벗’이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이 83년 1월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일을 도맡아 사업이나 실무를 관장했다. 86년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을 서울 강남에 개설했고, 박 전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은 ‘한국문화재단’의 부설연구원 부원장을 맡아 출판이나 장학사업 등의 실무를 맡았다. ‘여성중앙’ 87년 10월호는 “최태민의 다섯번째 딸 최순실이 박근혜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전횡을 일삼아 문제가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1998년 4월 대구 달성 보궐선거 이후 모습을 감췄지만 남편 정윤회씨를 박 전 대통령 보좌관으로 두며 본격적으로 비선권력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문고리 3인방으로 대표되는 보좌진도 직접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2월 19일.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날 최씨에 대한 의존과 질긴 인연을 잠시라도 끊었어야 했다. 취임 2년째인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이 터졌을 때 박 전 대통령은 사안의 폭발성을 인식하고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계속 비선을 감싸 안은 무신경과 무지, 무책임의 대가는 참담했다.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개인의 오명뿐 아니라, 장기간 국가적 혼란을 야기하는 유례없는 결과를 낳았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1979년 6월 열린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당시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을 맡고 있던 최순실씨가 퍼스트 레이디인 박근혜 새마음봉사단 총재를 밀착 수행하는 모습. 뉴스타파 동영상 캡처
1979년 6월 열린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당시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을 맡고 있던 최순실씨가 퍼스트 레이디인 박근혜 새마음봉사단 총재를 밀착 수행하는 모습. 뉴스타파 동영상 캡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