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다시 한 번 널 볼 수 있을까...' 가족 이별 장면 눈물연기 압권

알림

'다시 한 번 널 볼 수 있을까...' 가족 이별 장면 눈물연기 압권

입력
2014.08.30 04:40
0 0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남자 배우는 리버 피닉스(1970~1993)였다고 생각한다.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특이한 취향은 아닐 듯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생각에 동의해줄 또래 여성 지인 한두 명쯤 소환할 수 있으니까.

불사조라는 이름을 역설적으로 배반하고 겨우 스물셋에 세상을 떠난 그가, 엉뚱하게도 로빈 윌리엄스의 부고를 읽으며 떠올랐다. 살아 있었다면 23일 그는 마흔네번째 생일을 맞았을 텐데. 대체 할리우드 스타들은 왜 이리 일찍부터 마약에 중독되는 걸까.

열혈 팬까진 아니어서 그의 영화를 모두 보진 않았다. ‘스탠 바이 미’(1986년)와 ‘아이다호’(1991) 등 네댓 편 정도인데 그 중 피닉스의 대표작으로 꼽고 싶은 건 ‘허공에의 질주’(1988)다.

☞ KBS '추억의 부스러기' 로 영화 보기

고등학생 대니(리버 피닉스)가 야구경기에서 헛스윙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곧바로 어린 형제가 능숙하게 집을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을 비춘다. 처음 봤을 땐 리버 피닉스만 눈에 들어왔다.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 하나 입고도 어쩜 저렇게 멋있을까 생각하기만 했는데 다시 보니 굉장히 슬픈 장면이었다. 겨우 열두 살 정도 됐을 법한 동생이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강아지를 데리고 집을 빠져 나오는 모습이 짠해 보였다. 이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던 집과 다니던 학교를 버릴 수 있는 건 부모가 반전 운동으로 군사실험실을 폭파한 뒤 연방수사국(FBI)에 쫓기며 떠돌아다닌 지 꽤 됐기 때문이다.

부모는 언젠가 대니를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 단초가 음악이다. 새 학교로 옮겨 음악 선생님 앞에서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2악장을 연주한 대니는 재능을 인정 받아 본격적으로 음악 수업을 시작한다. ‘비창’은 영화의 정서를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음악이지만 정작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임스 테일러의 ‘파이어 앤 레인’(Fire and Rain)이다.

아들의 재능이 널리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는 아버지, 아들의 재능을 키워주고 싶은 어머니, 난생 처음 사랑의 감정과 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된 아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파이어 앤 레인’은 이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걱정과 고민, 우울을 달래준다. 대니의 여자친구까지 참석한 어머니의 생일 만찬에서 온 가족이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어제 아침 그들이 네가 떠났다고 말해줬어 / 수전, 그들의 계획이 네 인생을 끝낸 거야 / 아침에 밖으로 나와 이 노래를 써 / 그런데 누구에게 이 곡을 보내야 할지 기억이 안 나’

☞ 제임스 테일러의 '파이어 앤 레인' 라이브 영상

제임스 테일러가 두 번째 앨범 ‘스위트 베이비 제임스’(1970년)를 통해 발표한 이 노래는 ‘유브 갓 어 프렌드’ ‘핸디 맨’ 등에 비해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대표곡으로 꼽힐 만한 명곡이다. 가사는 테일러가 어릴 적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고 썼다. 약물 중독과 우울증을 앓았던 고통과 무명시절의 어려움이 함께 녹아 있는 곡이어서인지 가족이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은 왠지 쓸쓸해 보인다.

‘파이어 앤 레인’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한 번 더 나온다. 여자친구에게 작별을 고하고 가족과 함께 떠나려던 대니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라는 아버지의 말에 눈물을 글썽인다. 목석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대목이다.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눈물 연기가 또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을 태운 차는 대니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안녕을 고하곤 멀리 떠난다. 눈물을 삼키며 가족을 떠나 보내는 대니 그리고 열여덟의 리버 피닉스. 개인적으로 1980년대 할리우드영화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불을 봤고 비를 봤어 /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햇살 쏟아지던 날들도 봤고 / 친구를 찾을 수 없었던 외로운 시간들도 봤어 / 하지만 다시 한 번 널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고경석기자 kave@hk.co.kr

☞ 생일 만찬 장면

☞ 엔딩 장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