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세계 바둑 랭킹 1위인 중국 커제 9단이 벌일 세기의 반상 대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바둑계와 정보기술(IT) 업계에선 알파고의 우세를 점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커제 9단의 승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열어 놓고 있다.
12일 구글과 한국기원 등에 따르면 구글은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다음 달 23일부터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맞대결(3번기)을 가진다, 구글은 또 27일까지 이어질 이번 대국 기간에 알파고와 중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5명(스웨, 천야오예, 미위팅, 탕웨이싱, 저우루이양 9단)이 한 팀으로 구성돼 벌이는 상담기(26일) 및 복식(알파고&구리9단 vs 알파고vs렌사오8단) 경기(26일)도 함께 진행한다. 알파고의 공식 대국은 지난해 3월 한국기원 소속 이세돌 9단과 벌인 5번기에서 4승1패로 승리한 이후, 1년여만이다.
알파고, 일방적 승리 전망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알파고와 커제 9단의 진검승부다. 제한시간은 각자 3시간에 1분 초읽기 5회로 펼쳐질 이번 대국의 우승 상금은 150만달러(약 17억원)다. 커제 9단은 상금과는 별도로 출전료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을 이미 챙겼다.
커제 9단은 명실공히 현재 세계 바둑계의 1인자다. 지금까지 총 4차례의 세계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커제 9단은 현재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와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흑돌 보단 나중에 두면서 덤(7.5집 중국룰)이 주어지는 백돌을 선택했을 경우, 커제 9단의 승률은 80% 이상을 자랑할 만큼 막강하다.
하지만 IT업계와 바둑계의 대다수는 이번 맞대결 승리도 결국 알파고에게 돌아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추형석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커제 9단이 세계 1인자라고는 해도, 1년 전 보다 한층 더 강력해진 것으로 보이는 알파고에게 상대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 한국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인 목진석 9단도 “승부는 해봐야 알겠지만, 실력이 이미 검증된 알파고가 이길 것으로 본다”며 “커제 9단이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실, 1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향상된 알파고의 기량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실제 알파고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인터넷상에서 ‘마스터’와 ‘매지스터’란 아이디로 세계 바둑계를 주름잡고 있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의 간판급 프로바둑기사들에게 60전 전승으로 초토화시켰다. 이 전적에는 커제 9단과 벌인 3번의 대국에서 모두 승리한 결과도 포함됐다. 특히 대부분의 대국이 170수 안팎에서 상대방에게 역전은 어렵다는 판단을 강요, 항복(불계승)을 받아내는 괴력까지 뽐냈다. 당시, 알파고와 대국을 벌였던 국내 프로바둑기사 김정현 6단은 “알파고는 상대가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수’로 당황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며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맞대결 전망에서도 알파고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6단은 현재 국내 유일의 바둑 정규리그인 ‘KB 바둑리그’ 시즌 MVP를 2번(2011, 13년)이나 수상할 정도로 상당한 기력을 갖춘 선수다.
구글, AI 인지도 상승 및 중국 시장 공략…두 마리 대마 사냥
이번 대국의 승패가 관심사로 떠오르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구글의 전략에서 추진됐다는 부분 또한 눈 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구글은 현재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선 AI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 한 해 쏟아 붓는 예산만 5조원으로, 현재까지 누적 투자 규모는 33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전체의 인공지능 관련 예산이 5,000억원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맞대결을 통해 구글의 인공지능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도 끌어올리겠다는 추론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번 대국에선 중국 프로바둑기사 5명과 알파고가 5대1로 싸우는 상담기에, 복식 경기까지 준비됐다. 이번 상담기에 나설 중국 프로바둑기사 5명은 모두 세계대회 우승 경력을 가진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다. 바둑이 확실한 프로스포츠로 자리 매김한 중국에서 흥행을 불러 일으키기엔 충분한 밑그림인 셈이다. 목 9단은 “커제 9단과 벌이는 대국이 최대 관심사이긴 하지만 상담기나 복식 경기가 함께 열리는 것을 보면 구글이 이번 대국을 이벤트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입지 다지기 포석 역시 이번 대국을 준비한 구글의 계산서에 포함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현재 언론 통제 조치의 일환으로 현지에서 구글과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중국 관계당국의 통제 하에 놓인 인터넷 서비스 환경을 개선시켜보겠다는 구글의 의지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중국을 장악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나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모두 ‘바둑광’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2014년 한국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겐 나전칠기함에 담긴 바둑알도 선물한 바 있다.
“개선된 AI의 수준을 확인하는 수준”이라는 게 이번 대회를 준비한 구글측의 명분이지만 다각적인 해석을 낳게 하는 부분이다. ‘다가올 미래, IT 빅픽처’의 저자인 이가근 IT 전문 칼럼리스트는 “구글은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바둑 이벤트를 통해 자사의 AI 경쟁력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며 “구글에서 현재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무인항공기(드론) 등에 AI의 탑재 속도 또한 한층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