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공장 세우고 성장하던 현대차
中 토종업체들 저가 SUV에 고전
中 정부, 자국 기업에 유리하도록
하루아침에 구매세 인하 조치도
한국식 사업 방식 고집한 이마트
28개 매장 8개로 쪼그라들어
CJ오쇼핑 톈진 TV홈쇼핑 채널은
현지 소비자 기호에 맞춰 1위 질주
“중국 시장은 아무도 모른다.”
지난달 말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중국 톈진(天津) 난카이취(南開區) 스따이아오청(時代奧城) 중심가에서 만난 한 동포가 대형 쇼핑몰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이 곳 쇼핑몰은 올해 초까지 ‘쉽게 사서 득을 얻는다’는 의미의 ‘이마이더(易ㆍ買得)’ 간판이 붙어 있었다. 이마트의 중국어 상호다.
그러나 지난 2005년 문을 연 톈진의 첫 매장이자 상하이에 이어 중국 내 4호점인 이마이더 아오청점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4년 말 철수했다. 이 동포는 “참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도 10년을 버티지 못했다”며 “중국은 한국에서 잘 나가는 대기업들에게도 결코 쉬운 시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무서운 성장세와 수 많은 인구 때문에 무조건 뛰어들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여기던 중국 시장이 더 이상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세계의 시장 역할을 하던 중국이 달라지고 있다.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중국 시장
현지 공장을 바탕으로 매년 성장세를 이어온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지난해 중국 토종업체들의 저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란 복병을 만났다. 중국업체들이 그럴듯한 디자인의 SUV를 반값 수준으로 파는 바람에 현대차의 지난해 6월 중국 시장 점유율이 7.2%까지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현대차는 지난해 8월 중국 사령탑을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이후 파격 할인과 신형 투싼 등을 투입하며 분전했지만 11월까지 점유율 누계가 8.8%에 그쳤다. 지난해 연간 점유율은 2009년(9.8%) 이후 최저를 기록할 전망이다. 토종업체들은 중국 사람들이 좋지 않은 도로 사정에 적합한 SUV를 선호하고 승차감 등 품질에 대한 기준이 그리 엄격하지 않다는 점을 간파해 여기 맞는 전략을 제대로 펼쳤다.
외자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연간 300만톤의 철강제품을 중국 시장에 공급하는 포스코는 공급과잉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중국 시장 철강 공급량은 연간 8억톤 수준이지만 성장률 둔화로 소비가 감소해 1억톤 정도가 남아 돈다. 여기에 글로벌 원자재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서 치열한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시장 상황 때문에 중국 철강기업들의 90% 이상이 적자의 늪에 빠지자 인위적으로 연간 4,000만톤 감산에 들어갔다. 박종일 포스코 차이나 부장은 “당분간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며 “저가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술 격차를 유지하며 고급 철강제품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때 잘 나갔던 중국의 자동차나 철강시장이 한 순간에 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기업들은 변화무쌍한 중국 시장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내수진작을 위해 지난해 10월 1일 단행된 구매세 인하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는 불과 하루 전인 9월 30일 밤 전격적으로 인하안을 발표했다. 자동차의 경우 중국 토종 업체들이 유리하도록 엔진 배기량 1,600㏄ 이하만 대상에 포함시켰다. 현대차 중국법인 관계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시장환경을 하루아침에 뒤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화 실패하면 미래는 없다
빠르게 변화 중인 중국은 인건비가 상승하며 제조업 거점으로서 매력을 상실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14년 중국에 신규 설립된 우리 제조업 법인수는 314개로 2000년 이후 가장 적다. 2005년(1,537개)과 비교하면 5분의 1로 쪼그라들었지만 제조업 총 투자금액은 23억 달러에서 25억 달러로 늘었다. 기업 한 곳 당 평균 투자액이 약 150만 달러에서 800만 달러로 증가한 것이다. 그만큼 중소 제조업체들이 중국 진출하기란 힘들다는 의미다.
도소매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증가세가 꺾였지만 최근까지 꾸준히 신규 법인 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유통 시장에 승부를 걸겠다는 기업이 여전히 많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다.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현지화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2011년 28개까지 매장을 늘렸던 이마트는 현재 8개만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 성공한 사업방식을 적용했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생경함 때문에 외면했다. 10여년째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한 기업인은 “음식점의 경우 한국인 대 중국인 손님 비중이 2대 8이 되면 성공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100% 망한다”고 설명했다.
2012년 중국 진출 3년 만에 매장을 500개까지 확장하며 성공신화를 쓴 카페베네는 현지 가맹점주들과 분쟁을 겪으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현지 합자회사의 경영실패와 자금난이 원인으로 알려졌는데 중국 손실이 의외로 커서 본사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형국이다.
이와 달리 CJ오쇼핑이 2008년 톈진에 합자로 설립한 TV홈쇼핑 채널 '톈진 톈톈(天津 天天)’은 7개 홈쇼핑 채널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도 점유율 50%를 넘기며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전 직원 480명 중 주재원은 중국 경력 10년이 넘은 4명으로 최소화하고 상품 선정부터 방송까지 철저하게 현지 소비자들에게 맞춘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문영운 톈진 톈톈 총경리는 “유통은 제조업보다 변화의 폭이 크고 빨라서 현지화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중국 법학박사이자 베이징에서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김성훈 대표는 “아직도 중국을 하나의 시장으로만 보고 준비 없이 진출하는 중소기업들이 있다”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진출 문의가 급격히 늘었지만 그 중 얼마나 성공할 지는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베이징ㆍ톈진=글ㆍ사진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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