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가 원본보다 커 착각?
김재규가 소장 정치적 부담?
千화백 사망해 확인 어려워
‘미인도 위작 스캔들’은 검찰의 다각적 수사로 25년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지만 한가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애초에 고 천경자(사진) 화백이 왜 자신의 작품을 위작으로 주장했느냐는 것이다. 25년 전 처음 작가가 위작을 주장했을 때에도 미술계는 진품이라고 반박해 결국 천 화백은 절필을 선언하고 한국 화단을 떠났다. 지난해 8월 천 화백이 미국에서 세상을 뜬 사실도 두 달이나 지나서야 한국에 알려졌다.
검찰은 19일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천 화백이 미인도를 위작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고 밝혔다. 천 화백이 이미 사망한 이상 본인의 입장도 더 이상 확인하기 어렵다. 천 화백은 생전 “내 자식도 못 알아보겠느냐”며 위작을 확신했다.
천 화백이 처음 위작을 주장한 것은 1991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인도’ 포스터를 만들어 판매하면서다. ‘미인도’는 천 화백으로부터 작품을 건네받은 오모 전 중앙정보부 대구분실장 등을 거쳐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인수해 1990년 전시를 시작했다. 천 화백은 포스터가 시중 목욕탕에 걸려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해당 포스터와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된 원작을 확인한 뒤 “재료와 채색기법 등이 내 작품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통상 포스터가 원본보다 작게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더 크게 제작된 탓에 천 화백이 착각한 게 아니냐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인도’는 4호 상당(29X26㎝) 크기로 제작됐지만 포스터는 8호 상당(44.5X40㎝) 크기였다. 원작보다 확대 복사된 포스터를 보고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한켠에서는 한 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미인도’를 소장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 화백이 정치적 부담으로 자신의 작품임을 부인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인도’를 자신이 위작했다고 주장했던 권춘식씨도 결국 이번에 자신이 위작한 것이 아니라고 시인했다. 1999년 이상범 화백 작품 위작 사건으로 구속된 권씨는 “미인도도 내가 위작했다”고 주장해 다시 논란의 불을 지폈다. 권씨는 “당시 수사를 받으며 어떤 이야기라도 하면 형사처벌 정도가 약화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도 그는 ‘미인도’ 원본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위작했다고 주장했지만, 원본을 직접 본 뒤 “내가 그린 작품이 아니다”고 말을 뒤집었다. 그는 “(미인도는) 진품을 넘어 명품에 가까운 수작(秀作)”이라며 “내가 그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했다고 한다. 귀한 석채 안료를 사용해 채색한 덧칠의 정도나 깊은 색감 등은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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