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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세훈 '선거법 무죄 근거' 수긍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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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세훈 '선거법 무죄 근거' 수긍하기 어렵다

입력
2014.09.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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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선거 개입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과 트위터 활동이 국정원법 위반에는 해당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부는 지난 2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했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엄히 단죄해야 할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혐의에 대해 잇달아 관대한 판결을 내린 셈이다. 앞으로의 선거에서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에게 나쁜 신호를 주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원 전 원장 등의 지시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비방하는 정치관여 행위를 한 점은 인정되지만 선거법상 선거 개입 혐의로까지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으로 보기 위해서는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국정원장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재판부는 같은 행위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을 인정하면서 국정 성과를 홍보해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하고, 정부에 반대하는 야당과 정치인들을 반대, 비판했다고 근거를 댔다.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과 야당 후보를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과 SNS에 대량으로 띄운 행위가 목적을 가지고 계획한 게 아니라는 설명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같은 행위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은 맞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논리는 군색하다.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올린 글에는 “종북인증 발찌 찬 문재인” “문재인의 주군은 김정일”등 야당 후보를 노골적으로 비방하는 것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원 전 원장의 전부서장회의 녹취록에는 “야당이 되지도 않은 소리를 하면 처박아야지. 금년에 잘못 싸우면 우리 국정원은 없어지는 거야” 등 목적성과 능동성을 띠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상식적으로 봐도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무분별하게 관여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정황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전부서장회의 발언을 보더라도 명시적으로 선거운동 지시라고 볼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명백한 사실에 애써 눈을 감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재판부는 김용판 사건에서도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 내부 제보자의 진술은 외면하고 다수 증인들의 발언을 양적으로만 비교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렸다. 김 전 서울청장과 원 전 원장의 선거법 무죄 판결 모두 상식과 정의에 부합되는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번 판결이 나오자 일부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문제삼고 있으나 검찰의 수사와 기소 과정을 돌아보면 오히려 검찰의 수사의지 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첫 공판이 시작된 뒤에도 수사 과정에서 외압 논란이 일면서 특별수사팀장이 경질되고 수사팀이 공중 분해되는 등 검찰의 진상규명 의지가 후퇴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오히려 검찰 수사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특별검사 도입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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