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통상분쟁 대응 차질 불가피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DSB)가 올 9월 말 사실상 ‘기능정지’된다. 강대국과의 통상분쟁에서 다자체제인 WTO 분쟁해결절차에 의존해왔던 한국은 중요한 대응 수단을 잃게 됐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9월 30일 DSB 상소위원인 스리 바부 체키탄 세르반싱(모리셔스공화국)의 임기가 종료, 상소위원 7명 중 3명만 자리에 남는 공석 사태가 빚어진다. DSB 상소기구는 WTO 분쟁의 최종심(2심)을 담당하는 심판기구다. 2심 재판부는 상소위원 총 7명 중 3명씩 분쟁 사건별로 인적 구성을 달리해 구성되는데, 9월 이후 3명만 남게 되면 해당 시스템 자체가 운영될 수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상소위원이 4명으로 줄면서 3개월 걸리던 2심 과정이 1년 이상으로 늘어났다”며 “상소위원이 3명으로 줄면 해당 재판부가 담당하는 사건 1건을 빼곤 다른 모든 통상분쟁 재판들이 올 스톱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WTO DSB가 무력화된 건 다분히 미국의 의도 때문이다. 자국에 불리한 판정을 내놓는 DSB에 반감을 표출해 온 미국은 임기 종료로 상소위원 공석이 생길 때마다 신규 선임에 어깃장을 놓았다. 지난해 8월(김현종ㆍ한국) 상소위원 사퇴를 전후로 6월(리카르도 에르난데스ㆍ멕시코)과 12월(피터 반 덴 보쉐ㆍ벨기에)에 임기가 끝났지만 미국의 반대로 모두 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 특히 9월 임기가 끝나는 상소위원 세르반싱은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한데 미국은 이마저도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내년 말 WTO DSB가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상소위원 2명(인도, 미국)의 임기가 내년 12월에 동시에 종료, 상소위원 1명(중국)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WTO 체제를 무력화하면서 자유무역체제에 근본적 위협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한국산 세탁기 세이프가드와 철강제품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치 등에 대해 WTO 제소 카드로 맞서고 있다. 특히 정부는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방사성 누출 사고에 따른 주변 지역 농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조치와 관련, 최근 WTO DSB 1심에서 일부 사안에 패소하자 2심에서 해결하겠다고 상소했다.
통상 전문가는 “WTO DSB 기능정지 상황을 잘아는 정부가 통상문제가 불거질 때마다WTO 제소를 대책으로 내세우는 건 무책임하다”며 “김현종 본부장이 통상교섭본부장을 맡기 위해 상소위원에서 사퇴한 탓에 산업부 내에선 해당 문제가 공론화되는 걸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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