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로의 일관된 시스템을 갖추기 힘든 상황에서 자전거 우선도로를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이 무리수를 둔 구간이 분명 많을 겁니다. 그래도 자전거는 인도가 아닌 도로로 가야 한다는 인식을 던진 것부터가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할런지...”
서울 숭례문 옆 대로 한가운데 설치된 자전거우선도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한국일보의 기사(공공자전거, 도로 한복판으로 다니라고?)에 달린 댓글이다. 보도 이후 서울시가 뒤늦게 자전거 표시를 지우는 등 정비작업에 나서 빈축을 샀다. 자전거 진입 자체가 힘든 편도 5차로의 중앙에 자전거도로를 지정했다가 이를 번복한 것이다.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도로 여건이나 자전거 이동속도,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우선도로를 설치하다 보니 실제 안전확보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숭례문 오거리 외에도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은 뒷전인 자전거 우선도로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 우회전 차로가 2개 이상인 교차로
교차로 형태는 교통량과 흐름 등 여건에 따라 다르다. 자전거 통행이 위험한 교차로형태는 우회전 차로가 2개 이상인 곳이다. 이런 교차로에서 자전거가 직진하려면 2개 차로 이상을 가로질러야 한다. 자동차와 동선이 엉키게 돼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도로용 자전거(로드바이크) 정도는 돼야 간신히 자동차 이동속도에 맞춰 이동할 수 있다. 속도가 나지 않는 일반 자전거로 움직이면 차량흐름을 방해할 뿐 아니라 운전자에게 무단횡단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이 교차로에선 불편하더라도 우회전 차로로 이동한 뒤 횡단보도를 이용해 끌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 도로 우측에 버스전용차로가 설치된 경우
도로교통법은 버스전용차로는 버스만 통행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자전거는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없다. 문제는 도로 맨 오른쪽 차로가 버스전용차로인 경우다. 오른쪽 차로만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는 어떡하나. 서울경찰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현행법상 버스전용차로를 제외한 가장 우측 차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자전거교통포털은 “자전거가 버스전용차로로 진행 중 버스에 의하여 추돌사고를 당한다면 자전거도 법규위반 사항을 근거로 과실을 상당 부분 적용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 방식대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자전거 이용자들은 전용차로와 일반차로를 넘나들며 운행하는 버스와 빠르게 이동하는 일반 차량 운전자 사이로 다니도록 한 법규에 자전거 안전은 배제돼 있다고 본다.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한 시민은 “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지는 않겠다”며 “버스 통행과 승객들의 승하차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버스전용차로 통행을 계속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전거 이용자는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다 사고를 당하면 법규 위반으로 보상받는데 불리할 수 있다고 들었다”며 “하지만 보상보다 사고 위험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한 교통경찰관은 “자전거의 버스전용차로 이용을 단속하지는 않는다”며 “우측으로 붙어 통행하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자전거가 이동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자전거전용도로 이용이다.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나 보행자의 이동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서울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된 일반도로가 거의 없다. 정비된 지 얼마 안된 일부 지역에 자전거 지정차로가 설치돼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불법 주차 차량들로 이용의 방해를 받는 곳이 많다. 편의는 둘째치고 자전거의 안전이 우선되는 도로는 드물다. 자전거 관련 정책이 자동차 중심으로 시행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자전거 안전은 뒷전이다. 이용자 스스로가 안전을 챙겨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안전이 우선되지 않는 자전거 정책은 생색내기다. 공공자전거를 새로 배치하고 도로에 자전거 표시를 해 형식적으로 자전거 도로를 늘리기보다 이용자가 안전한 환경 조성이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서 자전거는 계속 레저용에 그치고 말 것이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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