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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편의점 도시락 단상

입력
2016.05.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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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IT)관련 일을 하는 30대의 처남은 원룸에서 혼자 산다. 어쩌다 처남의 원룸을 방문하면 밥 해먹은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뭐 먹고 사냐?’ 라고 물으니 ‘편의점’이란다. 평소 말이 없던 처남에게서 편의점 도시락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온다. 말수 적은 남자 둘이 대화하기에 적당한 주제다. 편의점별 도시락의 종류, 가격, 특징까지 완벽 분석한 후 ‘00 도시락이 제일 괜찮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혼자 살거나 혼자 일하는 사람들에게 ‘밥’이란, 반가우면서도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소규모 건축사무실을 운영하는 나의 경우에도 혼자 밥을 먹을 일이 자주 있다. 한창 식사시간은 일부러 피한다. 자리를 차지하고 먹기가 눈치 보인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는 아직도 쭈뼛거려진다. 그러니, 편의점 도시락이 반갑지 않을 리가. 가격도 저렴하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처남의 편의점 도시락 예찬론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근처 편의점 도시락 코너를 한참 어슬렁거리다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예전엔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음식이었는데 요즘은 일부러 찾아서 먹는 음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제법 푸짐하다. 그래도 연거푸 먹다 보니 분명 아쉬움이 있다. 먹는 행위만 있고 그 속에 있어야 하는 다양한 즐거움이 빠진 것 같다. 예를 들면, 음식을 두고 공감하고 대화하는 것이나 음식을 요리하고 또 요리되기를 기다리는 기대감 같은 것.

편의점의 매출이 대형마트의 매출을 넘어섰다고 한다. 마트가 가족 중심의 소비를 상징하고 편의점이 개인 중심의 소비를 상징한다면, 편의점은 우리 사회에 소가구 형태(1, 2인으로 구성된 가구)가 부쩍 늘어났다는 증명이 될 것이다. 소가구의 증가는 다양한 변화를 불러오는데, 소비패턴에서 즐기는 문화, 그리고 주거 등 전 분야에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몇 해 전 서울의 재래시장 중 하나인 망원시장에서 디자인 리서치를 진행할 적이 있었다. 전통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서비스 디자인으로 파악해보는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 시장이용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에 가장 공을 들였다. 리서치 결과, 망원시장 주변은 젊은 소가구의 분포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높은 지역이지만 실제 이들이 시장을 이용하는 일은 극히 적었다. 값은 싸지만 다량 구입해야 하는 시장의 판매방식이 소가구에 적합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1인 가구인 경우, 집에서 식사하는 가능성이 더 줄어들기 때문에 신선식품 위주로 구성된 시장 품목이 그들에게 어필할 가능성은 작았다. 주변에는 카페, 독립서점, 아틀리에, 사무실 등 젊음의 문화가 한창 침투하고 있었고 걷기 좋고 즐기기 좋다며 찾아오는 젊은 층도 늘어나고 있는데, 시장은 여전히 대가족 위주의 구조를 추구하며 변화의 속도가 늦었다. 그 틈을 주변 편의점이 차지했다. 소가구들에 편의점은 식당이고 쇼핑장소다.

소가구를 시장으로 끌어들일 전략으로 ‘'밥’을 통한 접근법을 제시했다. 혼자 밥 먹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먹는 일의 즐거움 - 편안함과 안락함, 충만감, 함께 하는 즐거움 - 을 채워주는 시장이 되도록 말이다. 혼자이되 함께하는 식탁으로서의 시장이 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 후로 망원시장은 혼자 사는 독립가구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왔다. 혼자서도 간단히 조리할 수 있도록 손질된 재료를 깔끔하게 포장한 1인 요리 키트를 선보였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마켓 콘서트나 레시피 경연대회도 있었다. 혼자 살지만 요리하는 즐거움을 북돋워 주는 노력이다. 다행히 젊은 층들의 관심이 많고 반응도 뜨겁다고 하니 반갑다.

벌써 저녁시간이다. 문득 처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건너뛰고 카페에서 일이나 하다 들어갈까 봐요. 요즘은 편의점 도시락 자주 안 먹어요.” 벌써 질렸나? 이건 어떤 식으로 분석하지?

정구원 트임건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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