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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용녀가 말하는 박찬욱과의 인연

입력
2017.05.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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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용녀. 최지이 인턴기자
배우 이용녀. 최지이 인턴기자

배우 이용녀는 왕성한 활동으로 눈길을 끄는 배우입니다. 영화 ‘여고괴담’(1998)에서 학생을 괴롭히는 여교사 역을 맡아 영화 연기를 시작한 뒤 ‘친절한 금자씨’(2005), ‘1번가의 기적’(2007), ‘곡성’(2016), ‘아가씨’(2016) 등에 출연했습니다. SBS ‘주군의 태양’, OCN ‘보이스’ ‘터널’ ‘나쁜 녀석들’ 등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해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띄는 이력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세 번 출연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를 인연으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아가씨’에도 등장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이용녀는 “박 감독이 날 왜 계속 찾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라며 웃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를 촬영할 때 어수룩하게 행동해 다시는 안 부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음 작품에도 꾸준히 출연 섭외 연락이 왔다는 겁니다.

이용녀가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연극판에서 ‘잘 나가던’ 이용녀는 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들어오는 섭외를 마다했습니다. 그러다 영화 스태프였던 학교 선배의 부탁으로 ‘여고괴담’에 출연했고,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를 보며 마음을 굳혔습니다. “‘해피투게더’를 본 후 늘 외롭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라지더군요. 세상에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그 영화를 보고 알았어요. 고민을 달래고 행복감을 느끼고 나니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절한 금자씨’ 캐스팅 오디션에 지원했습니다. 이용녀는 박 감독이 어떤 작품을 했는지도 모르는 영화 문외한이었다고 합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지방 공연을 하는 도중 “영화 찍으러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용녀는 납치범 백 선생(최민식)에게 살해당하는 어린이 재경의 엄마 역을 맡았습니다. 재경 엄마는 백 선생에게 복수하기 위해 폐교에 모인 피해자 학부모 사이에서 조용히 눈물만 흘립니다. 짧게 등장하는 역할이었지만 연기는 강렬했습니다.

당시 그는 액션, 컷과 같은 기본적인 촬영 용어도 몰라 박 감독의 지시를 이해하는 게 힘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배우들은 지시를 듣고 척척 움직이는데, 혼자만 뒤쳐지는 것 같아 위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용녀는 “박 감독이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게 몰래 다가와 알려주고 가더라”며 “배우 개개인에게 섬세한 배려를 할 줄 아는 감독”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막내 스태프와 후배 배우들이 있는 촬영 현장에서 이용녀가 면박을 듣고 민망해 할까봐 다른 이들의 귀를 피해 몰래 지적 사항을 전달했다는 겁니다.

이용녀는 OCN '터널'에서 살인범 아들의 자백을 설득하는 어머니 역할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OCN 방송화면 캡처
이용녀는 OCN '터널'에서 살인범 아들의 자백을 설득하는 어머니 역할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OCN 방송화면 캡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박 감독이 아예 “이용녀를 생각하며 각본을 썼다”고 합니다. 제작진이 극중 인물과 이용녀의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했지만, 박 감독이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박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용녀는 무시무시하다가도 어떤 때는 소녀 같다”며 “한 얼굴 안에 공존하기 힘든 매력이 다 들어있는 배우”라고 호평했습니다. 이용녀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12세 관람가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120세용이다. 대사마다 박 감독의 깊은 철학이 묻어난다”며 “이런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줘서 지금도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지만 두 사람은 사적으로 차 한 잔을 같이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이용녀는 그 이유를 “내 성격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소 누군가에게 살갑게 굴지 못하는 성격이라 현장에서도 혼자 조용히 연기를 준비한다”며 “박 감독과는 영화가 끝나고 쫑파티 때나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서먹하면서도 박 감독이 종종 이용녀를 찾는 이유는 뭘까요. 이용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생긴 건 표독스럽지만, 속은 다 비어있어요. 약간 엉뚱하고 허술하기도 하고요. 그런 제 이중적인 느낌을 독특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제 절 안 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미 많은 걸 받아서 감사해요. 지금 차기작을 검토 중인데 이런 제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역할로 돌아오겠습니다(웃음).”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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