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은 난장판인데 말 많던 래퍼들은 다 조용하네.’ ‘디스(상대를 공격하는 힙합 문화)하던 래퍼들 다 어디 갔나요?’
힙합 뮤지션들이 ‘힙합정신’ 실종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최근 힙합 열풍을 일으킨 유명 래퍼들이 정작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2일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역사X힙합 프로젝트, 위대한 유산’ 편이 방송된 뒤 시청자들 사이에선 “또 돈 자랑만 하다 끝남” “힙합이 저항인 건 옛날 이야기” 등 출연자들을 겨냥한 비판이 쏟아졌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래퍼들과 함께 역사를 힙합으로 풀어낸다는 내용으로 진행된 이날 방송에는 도끼, 개코, 지코, 송민호, 비와이, 딘딘 등 최근 힙합신에서 가장 핫한 래퍼들이 출연했다. 설민석 한국사 강사의 수업을 들으며 우리 민족의 위기극복 역사를 배운다는 내용의 유익함과는 별개로 이날 방송에서 일부 래퍼들은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등 가벼운 모습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시청 후기가 많았다.
최근 조PD, 제리케이 등 일부 힙합 뮤지션들이 국정농단을 비판한 노랫말로 시국선언에 나섰고 이승환, 이효리, 전인권이 상처 입은 국민을 위로하는 내용의 곡 ‘길가에 버려지다’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과시와 디스를 거침없이 쏟아냈던 유명 래퍼들이 현 시국에 대해선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어 힙합 팬들은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다. 대학생 조인형(27)씨는 “대세 래퍼들이 시국에 대해선 입을 다문 것 같다”며 “요새 힙합 무대를 장악한 래퍼들은 유난히 정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라 아쉽다”고 말했다.
힙합 댄스그룹 빅뱅도 시국의 불똥을 피하지 못했다. 빅뱅의 멤버들은 지난 10일과 11일 각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다섯 명의 빅뱅 멤버들이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YG)의 양현석 대표와 함께 음식과 술이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 앉은 모습이었다. 멤버 승리는 ‘우리 양 회장님 홈파티’란 글을 남겨 이날 모임이 양 대표의 자택에서 이뤄진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이날 이후 온라인에는 ‘시민들은 촛불을 드는데 한쪽에선 음주파티?’ ‘이 시국에 그것도 YG가?’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국내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아이돌 그룹과 기획사의 대표가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는 게 이유였다. 또 “연관성은 0%”라던 최근 양 대표의 해명에도 YG 소속 가수와 관계자들이 최순실씨 일가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래퍼 등 뮤지션들을 향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힙합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힙합문화 탄생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란 지적이다. 힙합 전문 웹진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인종차별이 현재진행중인 탓에 사회정치적인 시선이 가사에 자연스럽게 투영되는 미국과 달리 한국힙합은 애초 흥겨움을 위해 뿌리내렸다”라며 “국내 힙합에 무조건적 저항정신을 요구하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거침 없는 날선 비판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아온 만큼 시대정신을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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