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7월 26일
20세기 말의 셰일(Shale) 혁명은 19세기 인류가 석유를 뽑아 쓰기 시작한 이래 최대의 에너지적 사건으로 꼽힌다. 그 혁명을 사실상 혼자 주도한 미국 사업가 조지 미첼(George P. Mitchellㆍ1919~2013)이 3년 전 오늘(7월 26일) 별세했다. 그는 1998년 텍사스 포트워스 인근 유전에서 셰일층을 뚫어 천연가스를 채굴, 세계 에너지 시장 판도와 국제 정치질서, 근미래 문명의 전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가 자신의 성공을 확인하던 해 그는 79세였고, 그 때까지 근 20년 동안 전 재산을 자신의 도전에 쏟아 부었다.
셰일층은 미세한 진흙입자로 형성된 수평 퇴적암으로 입자 사이사이 미세 공간에 석유와천연가스를 품고 있다. 지질학자들이 셰일층의 가능성을 확인한 건 80년대 초였지만, 유전에 시추공을 뚫어 지하 배사(背斜)구조에 고인 석유와 가스를 퍼 올리면 되는 원유 채굴과 달리, 수평 암반에서 가스를 추출하는 작업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경제성도 없었다. 70년대 후반부터 미국 텍사스의 에너지 자원이 서서히 고갈되면서 큰 에너지 회사들이 해외 유전 개발로 옮겨갈 때 그 셰일층에 눈을 돌린 게 미첼이었다.
그는 그리스 이민자의 아들로 텍사스의 항구도시 갤버스턴에서 태어났다. 석유 아니면 목장이 전부였던 그 시절 텍사스에서 야심 찬 그는 당연히 석유를 선택했다. 텍사스 A&M대 석유공학과를 수석 졸업한 그는 2차 대전 중 미국 공병대에서 4년을 복무한 뒤 유수의 석유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미첼 에너지’라는 독자적인 회사를 설립했다. 형제들과 함께 10대 시절부터 유전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사들인 작은 땅에서 석유가 나온 행운 덕에 그는 꽤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대형 회사들과 해외 유전 개발 경쟁을 벌일 처지는 아니었다. 그가 셰일층을 파고든 것은 모냐 도냐의 선택의 결과였다.
1980~90년대 그에게 투자한 여러 회사들이 모두 중도 포기하거나 도산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수평채굴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저 결실을 이루었다. 그가 셰일층을 쥔 회사를 35억 달러에 팔고 대주주 지위에 만족한 건 개발할 자본이 남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그는 지구 화석연료의 새로운 노다지를 드러낸 일이 께름했던지, 숨질 때까지 약 4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환경 과학과 청정에너지 등 연구단체와 대학에 기부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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