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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시 울산ㆍ거제 불빛이 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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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시 울산ㆍ거제 불빛이 꺼져 간다

입력
2015.1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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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重

조선업 불황에 대규모 적자

구조조정ㆍ임금삭감 등 극약처방

15만명 인력 씀씀이 줄이자

폐점상가 늘고 아파트 분양률 ‘뚝’

상인들 “IMF 때보다 경기 나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도시인 울산과 경남 거제가 조선업 불황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문을 닫는 상가가 줄을 잇고 있고 아파트 분양률은 뚝 떨어졌으며 구조조정의 아우성이 메아리치고 있다.

호황 때 불황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리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주민들은 업황이 개선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찾은 경남 거제시 고현사거리는 거제시청이 자리한 지역상권의 중심이지만 지나가는 행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휑했다. 상인들은 사람들 자체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47ㆍ여)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이제 밖에서 식사하는 사람 수가 크게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현대중공업과 함께 국내 양대 조선소인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인근 분위기도 비슷했다. 카페 매니저 김모(43ㆍ여)씨는 “점심시간이면 18개 테이블이 외국인 근로자로 90% 정도 찼는데 지금은 절반이 채 안 찬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적자 여파가 거제조선 본사가 위치한 경남 거제지역을 휩쓸고 있다. 거제지역 상인들은 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면서, 향후 더 나빠진다면 아무도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거제시 연도별 상가수 변화. 한국일보
거제시 연도별 상가수 변화. 한국일보

거제시는 지난달 기준 올해 아파트 분양률이 68%(지난해 100%)로 뚝 떨어졌고, 폐점상가는 1,530곳에 달한다. 조선업 경기가 활황이던 시기 지나가는 강아지도 1만원권 지폐를 물고 다닌다던 우스개 소리는 이제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대우조선해양 정규직은 1만3,240명(협력사 3만5,800명),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정규직은 1만4,000명(협력사 2만3,000명)으로 이들 인력만 총 8만6,040명에 이른다. 지역 내 사업체 종사자수가 12만~13만명임을 감안하면 경제활동인구의 66~72%를 두 조선소가 담당하는 셈이다. 2, 3차 협력업체 인력을 빼놓고도 이 정도니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겹겹이 하도급을 주는 조선업계 특성상 사내ㆍ외 협력업체(1차 협력업체) 직원을 제외한 일명 ‘물량팀’(2, 3차 협력업체 일당노동자)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진덕영 거제시 조선경제과장은 “조선경기가 좋았던 2012~2013년에는 물량팀이 5만~8만명 정도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타지로 빠져나간 것 같다”며 “2, 3차 협력업체의 물량이 줄어든 것이 그 배경”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기불황의 그림자는 상가에 짙게 드리웠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거제지역 상가는 지난해 말 1만3,646곳에서 올해 10월 현재 1만2,116곳으로 1,500여개나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음식점 693곳(4,720곳→4,027곳) 소매점 356곳(2,330곳→1,974곳) 생활서비스 142곳(1,648곳→1,506곳) 교육 83곳(657곳→574곳) 등이다.

29일 오후 경남 거제 장평로 일대 거리가 사람들 없이 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제=전혜원기자 iamjhw@hankookilbo.com
29일 오후 경남 거제 장평로 일대 거리가 사람들 없이 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제=전혜원기자 iamjhw@hankookilbo.com

세계적 기업인 현대자동차에다 SK, S-OIL 등 국내 굴지의 유화업체가 밀집해 지역경제 저변이 탄탄한 울산도 초대형 사업장인 현대중공업의 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정규직원 2만6,000여명, 협력업체 근로자만도 3만8,000여명에 이른다.

현대중공업은 올초 임원의 30%를 줄이고 과장급 이상 사무직 1,0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근로자들이 지갑을 열리 만무하다. 지역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건 당연하다.

현대중공업 인근 울산 동구의 음식점 주인 최모(52)씨는 “20년 이상 장사를 해왔지만 이런 불경기는 처음 본다”면서 “근로자들의 회식문화 자체가 없어져 규모가 큰 음식점은 모두 셔터를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이 대규모 적자 속에 추가 구조조정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올해 노사의 임금협상 자체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노사에 따르면 회사는 한달 만인 지난 12일 재개된 임금협상에서 이례적으로 2차 제시안을 철회하고 교섭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올해 임금협상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임금동결을 골자로 한 회사의 2차 제시안에는 격려금 100%+150만원, 상여금 300% 기본급화, 사내근로복지기금 20억원 출연, 임금 및 직급체계 개선을 위한 노사공동위원회 구성 등이 담겨 있었다.

사측의 제시안 철회는 조선업계에 불어 닥친 최악의 불황 탓으로 향후 사측은 이보다 더 후퇴한 협상안을 들고 나올 것으로 보여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저가수주 경쟁 탓으로 올해 현대중공업은 1조원대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부터 임원 감축에다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자체 구조조정 작업을 벌였지만 조선업 전반을 재편하는 작업이 본격화하면 인력과 조직을 더 슬림화해야 할 형편이다. 조선업종에서만 2~3년 내 단계적으로 1만여 명이 정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회사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어느 때보다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역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의 경우 올해 들어 인구가 500명 이상 줄어 주민세 수입이 감소하고 있다”며 “원룸 및 아파트 등 부동산 거래부진으로 부동산중개업소가 경영난에 허덕이는 등 사상 유례없는 불황에 지역 경제 주름살도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 종사자들은 울산, 거제의 침체가 조선경기 자체의 문제보다는 시장환경의 변화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상선 건조’의 자리를 ‘해양플랜트사업’이 대신하면서 하청업계의 일감이 급격히 줄었다. 해양플랜트사업의 주요부품은 대부분 외국 기업에서 들여와 국내 2, 3차 협력업체의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국제유가가 올라가면 유류비가 늘어나 상선수주가 떨어지는 반면 석유를 시추해 팔려는 업체들이 몰리면서 해양플랜트 산업 수주는 올라간다. 2008~2013년 국제유가 추이(배럴당 40.52달러~109.03달러)를 보면 배럴당 109.03달러였던 2012년 두 조선소의 해양플랜트 수주액이 가장 높았다. 그 해 해양플랜트 수주액은 대우조선해양이 105억달러,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가 84억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상선 수주액은 각각 13억5,000달러와 12억달러에 그쳤다. 당시의 여파가 화산재처럼 거제와 울산을 덮친 것이다.

김형식 대우조선해양 부장은 “상선과 달리 해양플랜트의 기본적인 부품은 외국산이다. 예컨대 드릴십(시추선)이 7,000억원인데 시추구멍을 뚫는 드릴링타워만 1,500억원 수준”이라며 “드릴링타워를 만드는 회사는 외국기업 2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가 침체하면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지자체와 기업의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거제시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천문학적 영업손실과 구조조정 여파에 따라 침체에 빠진 지역 활성화를 위해 전방위적인 ‘지역경제살리기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5%와 15∼20% 매출이 감소한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등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전통시장 주차환경 개선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매주 금요일을‘구내식당 급식 없는 날’로 운영하고 ‘전 직원 외식의 날’과 ‘공직자 가족 외식의 날’을 통해 소비촉진도 유도한다.

대우조선해양도 16일 창사 이래 최초로 조선소 생산공정을 4시간 동안 완전히 멈춘 채 임직원 4만5,000여명이 ‘전사(全社)경영정상화 대토론회’를 열고 현재의 위기상황 극복방안 마련을 위해 의견을 모았다. 30일 오전 정성립 사장과 현시한 노조위원장, 협력사 대표, 직원 등 1,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합동 대토론회 결과 및 추진계획 보고회’도 개최한다.

권민호 거제시장은“거제 경제가 위기인 만큼 지역경제 활력보탬 시책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지역경제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두 조선소의 상선 수주액이 늘고 있는 것도 희망적이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중순 100달러선이 붕괴되며 하락 조짐을 보이더니 급기야 지난 18일에는 7년 만에 30달러대(두바이유 기준)에 진입했다. 국제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한 지난해 말 기준 상선 수주액은 대우조선해양 120억5,000달러(해양플랜트 26억5,000달러),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41억달러(해양플랜트 32억달러)로 나타났다. 시민들은 상선 수주가 2, 3차 협력업체의 물량 증가와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울산=김창배기자 kimcb@hankookilbo.com 거제=이동렬기자 dylee@hankookilbo.com 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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