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의중”판단 에둘러 거부 의사
‘권력자’ 발언 박 대통령에 맞서
친박 서청원 “왜 분란 일으키나”
도발에도 金대표 아무 대꾸 없어
당분간 확전 의사는 없는 듯
“정치에서 가장 독한 놈이 누군지 아나? 참는 놈이다. 그래서 정치가 어렵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후배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난해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와 ‘유승민 낙마 정국’ 등 잇단 당ㆍ청 갈등 국면을 겪은 뒤였다. 여야의 연금개혁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해 방향을 틀고 끝내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원내사령탑이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김 대표는 참고 참았다. 고비마다 갈대처럼 휘어지는 김 대표를 가리켜 당내에서는 “무대(무성대장ㆍ김 대표 별명)가 아니라 무소신”이라는 냉소도 나왔다.
그랬던 김 대표가 최근 ‘권력자 발언’으로 박 대통령에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2012년 박 대통령이 국회선진화법 입법을 주도한 전력을 겨냥한 발언이다. 하지만 진의는 자신이 밀어붙인 상향식 공천제를 훼손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와 가까운 한 의원은 “무대가 그간 충분히 청와대에 맞설 수 있는 상황에서도 참은 이유는 작은 분란으로 대의를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라며 “다만 참되 본인이 정말 지켜야 할 가치와 대의는 포기하지 않는 게 무대”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대표의 입에서 권력자 발언이 터져 나온 직접적인 계기는 공천관리위원장 인선 문제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여권 관계자는 “친박계가 대구 4선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이한구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하는 이유는 박 대통령의 의중 때문”이라며 “김 대표에게도 그런 뜻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상향식 공천제의 기틀이 담긴 당헌ㆍ당규를 엄격하게 해석해 적용하기 위해선 결단력 있는 법관 출신이 공관위원장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공관위원장 인선에까지 친박계의 압력이 거세지자, 연이은 권력자 발언으로 에둘러 거부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친박계가 미는 이 의원은 과거 “컷오프를 하든 뭘 하든 전략공천은 필요하다”, “현역 물갈이가 불가피하다” 등 김 대표의 소신과 배치되는 주장을 강하게 피력해왔다.
다만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현재 권력인 대통령과 맞서는 본격적인 대선 행보나 자기 정치를 시작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친박계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른바 권력자 발언을 겨냥해 “왜 당에 분란을 일으키느냐”며 “오히려‘김무성 대권’을 위해 완장을 찬 사람들이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다”고 도발했지만, 김 대표는 대꾸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날 전남 여수에서 열린 여수ㆍ순천ㆍ광양 상공회의소 초청 강연회가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다”며 피해갔다. 당분간 확전은 없다는 게 김 대표 측 인사들의 전언이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여권 내 분란은 안 된다는 게 대표의 생각”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성공과 총선 승리를 위해서도 그렇다”고 말했다. 청와대 역시 공개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김 대표의 발언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청와대가 대응할 경우 공천 개입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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