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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페럿 170여마리 거둔 사랑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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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페럿 170여마리 거둔 사랑의 손길

입력
2015.01.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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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실수로 키우던 페럿들 죽어 죄책감 못 이겨 음독 자살시도까지

사육법 알리려 인터넷 카페 만들고 전국 각지서 구조해와 돌보며 분양

유기 페럿의 '대모' 신재금씨가 13일 '페럿의 꿈꾸는 다락방'이 있는 김포시 풍무동 집에서 페럿들을 돌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유기 페럿의 '대모' 신재금씨가 13일 '페럿의 꿈꾸는 다락방'이 있는 김포시 풍무동 집에서 페럿들을 돌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한 포털사이트에서 ‘페럿의 꿈꾸는 다락방’이란 카페를 운영하는 신재금(52)씨는 애완용 족제비인 페럿(Ferret) 23마리에게 자신의 안방을 내주고 거실 바닥에서 지낸다. 페럿에 내준 방은 신씨가 살고 있는 김포시 풍무동 집에서 가장 넓고 따뜻한 방이다. 딸이 쓰는 방을 제외하면 방 한 칸이 더 있지만 이마저도 이동장, 사료, 위생용품 등 페럿에 딸린 세간을 놓는 용도로 쓰인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현관에서 불어오는 외풍을 견디며 지내야 하지만 신씨의 표정에는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다.

13일 만난 신씨는 안방 내부를 보여주면서 “버림 받아 갈 곳 없는 페럿들의 마지막 보금자리”라고 설명했다. 주객이 전도될 정도로 끔찍한 신씨의 페럿 사랑은 10년 전 시작됐다.

회사를 다니다 2005년 3월 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던 신씨에게 딸 김승연(30)씨가 자신이 키우던 페럿 ‘루나’를 데리고 왔다. “임용고시 준비를 하는 동안 잠시만 보살펴 달라”는 딸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 신씨는 엉겁결에 페럿을 키우기 시작했다. 작고 귀여운 외모의 페럿은 호기심 많고 활동적이라 함께 지내니 적적하지 않아 좋았다.

오손도손 행복했던 시간도 잠깐, 이듬해 여름 비극이 찾아왔다. 신씨가 세탁기 안에 있는 루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빨래를 돌린 것. 구멍이나 이불 속으로 숨길 좋아하는 페럿의 특성을 깜빡 한 탓이었다. 루나가 죽자 죄책감을 못 이긴 신씨는 입에 농약을 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신씨는 얼마 뒤 새 가족 ‘몽이’를 입양했다. 그러나 신씨의 억장은 또 한 번 무너졌다. 몽이마저 산책 도중 이동장의 작은 틈새로 빠져 나가 잃어버린 것이다. 그 길로 회사에 사표를 내고 1년 가까이 몽이를 찾아 헤맸지만 끝내 재회하지 못했다.

아픈 경험을 교훈 삼아 신씨는 페럿을 키울 때 명심해야 하는 점들을 알리기 위해 2011년 초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했다. 신씨가 카페 회원들이나 동물구조협회의 제보를 받아 전국 각지에서 버려진 페럿을 구조해 돌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금까지 신씨의 도움으로 주인을 다시 만나거나 새 가정에 분양된 페럿은 150여마리에 달한다.

페럿이 문밖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다른 반려동물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배신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마다 1,200여마리의 페럿이 원산지인 미국에서 수입돼 현재까지 1만5,000여마리 이상이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신씨는 “페럿은 개, 고양이처럼 짖거나 울지 않아서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며 “사람을 잘 따르기도 해서 2000년부터 국내에 입양 붐이 일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귀여운 외모나 장점만 보고 페럿을 입양한 상당수는 족제비 특유의 체취나 사료값, 병원비 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국내 동물보호정책은 유기동물의 99%(농림축산검역본부 2013년 기준)를 차지하는 개, 고양이 중심이기 때문에 ‘기타’에 속하는 페럿은 구체적인 통계나 실태자료가 전무하다. 게다가 하수구 등 틈새로 숨는 족제비의 특성상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아 유기 사실이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때문에 신씨는 입양 전 철저한 사전 준비를 당부했다. “족제비를 키우려면 알아야 할 것이 많고 불편한 일도 적지 않습니다. 굳은 마음가짐 없이 덥석 페럿을 집으로 데려 간다면 저와 같은 상처를 갖게 될 수도 있어요.”

수술 후유증에 몸이 성치 않지만 신씨는 집에서 페럿 용품을 손수 만들어 판매하며 그 수익금으로 페럿들을 지키고 있다. 유기 페럿의 대모로 불리는 신씨의 꿈은 하나다. “가족을 잃은 페럿이 한 마리도 없을 때까지 뛰어다닐 겁니다. 그게 제 곁을 떠난 루나와 몽이에게 속죄하는 길일 테니까요.” 김포=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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