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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가장 소중한 세이브를 놓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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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가장 소중한 세이브를 놓쳤습니다

입력
2015.06.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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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몸 물려주신 어머니 덕" 입에 달고 살던 두산 마무리 노경은

모친 암 판정 두 달 만에 별세 "지켜드리지 못해…" 뼈아픈 사모곡

노경은(두산)이 지난 14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NC와의 경기 9회초에 나서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경은(두산)이 지난 14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NC와의 경기 9회초에 나서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건강한 몸을 물려주셔서….”

기자와 마주 앉아 진행한 모든 인터뷰에서 노경은(31ㆍ두산)은 ‘어머니’란 단어를 빼 먹지 않았다. 2012년 8월 어느 날이었다. 불펜에서 선발로 전환해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갑자기 투구수가 불어났는데 몸은 괜찮냐”고 묻자 “아무 문제 없다. 좋은 몸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1년 반 뒤 이번엔 2013시즌을 마치고 잠실구장 식당에서 마주했을 때도 그는 “몸은 괜찮다. 어머니 덕분인 것 같다”며 웃었다. 그 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시즌을 맞이한 그는 토종 투수로는 가장 많은 3,000개의 공을 정규시즌에서 던졌다.

그의 입에서 다시 ‘어머니’ 소리가 나온 건 올해 2월26일 일본 미야자키에서였다. 1차 전지훈련에서 턱 뼈가 부러져 입 안에 와이어를 끼고 있던 그는 동료들이 보고 싶다며 2차 캠프를 방문했다. 그는 “병원에 가니 오른쪽 턱이 사람 머리 만큼 부었다. 거울을 봤는데 누가 뒤에서 날 쳐다보고 있는 줄 알았다”며 “다행히 수술은 할 필요 없다고 한다. 역시 내 몸은 단단한 것 같다”고 농을 치는 여유를 보였다. 그러면서 “6주 뒤면 공을 던질 수 있다고 들었다. 빠르면 4주 안에도 낫는다고 하더라”며 “예전에 갈비뼈 2개가 부러졌을 때도 치료가 금방 끝났다. 부모님이 좋은 뼈를 주셔서 그런지 이번에도 아주 심하게 다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경은에게 어머니 전기순(50)씨는 그런 존재였다. 큰 부상 없이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통뼈’를 물려주신 분이었다. 하지만 턱뼈 부상을 털고 예상보다 빠르게 1군 엔트리에 등록된 뒤 며칠이 지났을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려왔다. 50세의 어머니가 유방암 4기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암이 전이된 뒤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워낙 건강했던 분이라 처음 건강검진에서 재검 판정이 나왔을 때 무심코 지나쳤는데, 그것이 화를 불렀다. 그의 누나는 울며 불며 병원에서 밤을 지새웠고, 노경은은 그런 누나와 어머니 곁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재검 소견을 받고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지 못한 자기 자신만 원망했다.

노경은은 자신의 SNS에서 ‘엄마, 아들 야구 하는 거 보러 와야지’라는 글귀를 남기며 공을 던졌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힘들 법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훈련을 소화하며 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그러다가 5월 중순부터는 100%의 컨디션을 자랑하며 잇따라 세이브를 올리기도 했다. 시속 142~143㎞의 고속 슬라이더는 2012년 때의 구위를 보는 듯 했다. 두산 코칭스태프도 “역시 투수 중 최고의 구위다. 페이스를 이어가면 마무리 걱정은 없다”고 평했다.

하지만 머지 않아 노경은의 SNS 글귀는 ‘엄마, 이젠 아프지 말고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로 바뀌었다. 암 판정을 받은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전 씨는 22일 위독해졌고, 23일 끝내 아들 곁을 떠났다. 노경은을 잘 아는 지인은 “동료들한테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공을 던졌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느냐”며 “경은이는 분명 더 단단해져 돌아올 것이다. 그럴 선수다”고 말했다.

함태수기자 hts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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