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창업허브로 역할 재정립
개명 논란 피하고 성과는 수용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유산인 ‘창조경제혁신센터’의 명칭을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폐기 과정에서 야기될 불필요한 논란은 줄이고 전 정권 정책이라도 성과는 최대한 수용하는 ‘실용주의 노선’의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기획재정부, 중소기업벤처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 ‘창조경제혁신센터 세부개편방안’을 수립해 발표할 계획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역 기업의 창업ㆍ성장을 돕기 위해 지난 2014년 9월부터 전국 17개 시ㆍ도에 구축됐다. 다만 박근혜 정부 당시 대기업 지원을 압박해 설립됐고 지나치게 정부 주도로 운영됐다는 비판을 감안해, 중견ㆍ벤처기업, 대학 등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지역창업허브로 역할을 재정립한다는 게 현 정부의 방침이다.
당초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문패를 바꿀 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명박 정부 ‘녹색성장’이 박근혜 정부에서 철저히 부정된 것처럼, 정권 색깔이 강한 경제 표어는 그간 예외 없이 폐기 수순을 밟아왔다.
특히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지난 정부의 대표 창업 인프라로 꼽혔던 판교창조경제밸리가 지난달 ‘판교제2테크노밸리’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이런 예상은 더욱 높아졌다. 실제 박근혜 정부에서 탄생한 미래창조과학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바뀌며 ‘미래’ ‘창조’ 등 용어를 버렸다. 창조로 시작되던 부처 내 조직명도 속속 바뀌어 농림축산식품부는 올 들어 창조농식품정책과를 농산업정책과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과 달리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름을 지킨 셈이다. 이를 두고 정부 안팎에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중기부 관계자는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 정권 역점사업이었을뿐 아니라 지역마다 인지도도 높아 명칭은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혁신성장이 이번 정부 경제정책의 큰 틀인 만큼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추후 혁신성장 거점으로 활용 가능하다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나 안보가 아닌 경제에서만큼은 이름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는 의도도 엿보인다. 앞서 창조경제가 모호한 의미로 인해 기대만큼 추진동력을 얻지 못한 걸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 해외판 ‘새마을운동’인 새마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은 해외의 우호적 여론을 반영해 올해 관련 예산이 증액 편성되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창조가 붙었다고 해서 지난 정권의 사업을 모두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공감대가 이미 정부 내에 형성돼 있다”며 “혁신성장 방향에만 맞으면 취사선택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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