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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보수화 우려 속 뒤집는 판결… 고법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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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보수화 우려 속 뒤집는 판결… 고법의 '존재감'

입력
2015.02.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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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개입 등 굵직한 사건 1심보다 전향적, 기득권 견제

"1·3심 보수화 따른 반대급부, 승진서 자유로운 특성도 한몫"

젊은 판사들이 많은 지방법원(1심)보다, 나이 지긋한 판사들이 모인 고등법원(2심)이 더 소신 있는 판결을 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최근 서울고법이 국가정보원, 대기업 그리고 행정부를 상대로 한 주요 사건에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견제하는 소신 판결을 잇따라 내놓으며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사법부의 보수편중 논란 속에서 승진 인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고법이 상대적으로 ‘눈치보기’가 덜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와 올해 서울고법은 주요 사건에서 1심 결과를 대부분 뒤집었다. 대표적으로 “객관적 사실에 부합해야 정답”(2014학년 수능 세계지리 오류 사건), “국가정보원의 정치관여와 선거개입 모두 인정”(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등 일반인들의 상식에 맞는 판결이 나왔다. 1심은 “(객관적 사실과 달라도) 평균 수험생이 정답을 고를 수 있다” “정치관여는 했지만 선거 개입은 아니다”등의 비논리적 판결로 비판의 중심이 됐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경우, 서울고법은 국정원장을 직접 언급하며 불법적인 조사의 책임을 강도 높게 지적했다. 피고인 유우성(35)씨의 여동생 가려(28)씨 조사에 대해 “국정원이 사실상의 감금 및 회유 등을 통해 무리하게 수사했다”고 수사의 불법성을 인정했다. 1심은 비록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국정원의 불법 감금은 인정하지 않았었다.

서울고법은 또 이석기 전 의원 사건에서 1심이 인정한 내란음모를 인정하지 않고, 내란선동만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회합 녹음 파일을 수십 번 들었다고 한다. 그런 뒤 재판부는 “회합 참석자들이 내란음모에 합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항소심 판결 그대로 확정됐다.

민사ㆍ행정 사건에서도 고법의 판결은 주목 받았다. 서울고법은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서 매우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회사 측이 회계보고서를 통해 미래 손실을 과장하고, 무급휴직 등도 시행하지 않은 만큼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결론지었다. 현재의 정리해고 판례에서 한 발짝 나아간 것으로 평가된 이 사건은, 그러나 대법원에서 기업의 입장이 더 받아들여져 파기 환송됐다. 고법은 또한 9명의 해직자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건에서는 “두 개의 기본권이 상충한다면 양립과 조화를 모색해야지, 교육권 보장 때문에 사립학교 교원의 단결권마저 부인해서는 안 된다”며 관련 법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고법의 잇단 소신 판결에 대해, 법조계는 보수화된 1ㆍ3심에 따른 반대급부라는 분석이 많다.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진보 성향의 과거 ‘독수리 5형제’대법관이 있을 때는 1심 재판부가 더 소신 있었다”며 “사법부 최고위층의 보수적 성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급심에 무형적으로 압력이 돼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 구성이 보수화 돼 있고 ‘법원의 꽃’으로 불리는 고법 부장판사로의 승진인사에 민감한 1심 판사들에 그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법 부장들이 평점을 잘 받기 위해 법원장 주최의 행사에 참여를 하고, 항소율을 낮추기 위해 조정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며 “인사에 자유롭지 않은 지법 부장들이 경우 특정 법원장이 보수 성향이라면 그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은 현 인사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법 부장판사들은 대법관 승진을 제외한다면 순환근무에 따른 지방의 법원장 혹은 대법원 행정처 간부로 가는 것이 전부다. 보수화가 완연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등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증거에 충실하고 소신에 따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현직 고법 부장판사는 “기득권 이익과 반대되는 판결을 내리려면, 정치적 고려와 (승진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며 “요직을 가려는 마음이 남는 이상 (기득권 이익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리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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