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7.08.24 17:11
수정 : 2017.08.24 17:46

[황영식의 세상만사] 유쾌하고도 불안한 상상

등록 : 2017.08.24 17:11
수정 : 2017.08.24 17:46

사용 전력보다 큰 전력을 얻는다면

패러다임 전환 재촉할 엄청난 사건

역사의 발전? 감당 못할 현실 파괴?

토막 휴가 내내 머리가 무거웠다. 우연한 꿈이 며칠이고 이어졌기 때문이다. 완전히 꿈만도 아닌 것이, 실제로도 비슷한 장면을 본 듯했다.

유난한 더위에 밤마다 서너 시간을 에어컨에 기대어 겨우 잠들며 전기요금 걱정을 했던 탓일까. 꿈은 모터라고 하기도, 발전기라고 하기도 애매한 물건이 주인공이었다.

한 모터 제작자가 에너지 효율을 높인 신형 모터를 개발하다가 꿈 같은 모터와 만났다. 모터의 에너지 효율을 좀먹는 ‘코깅 토크(Cogging Torque)’를 최소화하려고 영구자석 소재와 배치를 수없이 바꿔보다가 우연히 마주한 현상이었다. 그 우연은 같은 방식으로 만든 여러 모터에서 똑같아 필연성을 얻었다.

모터는 특정 회전수(rpm)까지는 여느 모터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고효율 모터로서 상업적 경쟁력을 가졌다. 그런데 특정 회전 수를 넘으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터에 들인 것보다 많은 전력이 나왔다. 출력이 5배가 넘었다. 다른 간섭요인은 찾을 수 없었다.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에너지는 발현 형태만 바뀔 뿐 그 총량은 불변이라는 열역학 제1법칙과 모순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트릭이 개입했어야 하는데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 3상 교류 모터를 돌리는 데는 일반 가정용 전기면 충분했다. 가정용 단상 교류를 3상 교류로 바꾸는, 시중에 널린 범용 인버터 외에 다른 장치는 없었다. 반면 모터 안에 트릭이 숨겨졌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떤 장치든 결과적 ‘에너지 증폭’을 가져온다면 그만이다.

그래도 사람의 습관은 무섭다. 꿈 속에서조차 과학 상식을 총동원하고 관련 전문서적을 뒤지며 더해진 에너지의 원천을 찾으려 애썼다. 유일한 실마리는 지자기(地磁氣)였다. 에너지보존 법칙을 벗어난 영역이어서 만화 같은 상상력을 보태는 데 거리낄 게 없었다. 모터 안의 영구자석이 지자기의 표현물이나 상징물로 기능한다면, 지자기를 끊임없이 전기로 바꿔 줄 수 있다. 에너지 총량은 보존되는 셈이고, 전환된 에너지도 지자기 총량에 비해 얼마든지 제로(0)로 보일 수 있다.

문제는 이 모터가 가져올 충격파다. 처음 꿈에서 꿈 같은 얘기를 듣고는 뛸 듯이 기뻤다. 모든 집에서 이 작은 모터를 하나씩만 사용하면 곧바로 전력 소비를 5분의 1로 줄이고, 마음 놓고 에어컨을 돌릴 수 있다. 산업체의 에너지 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 전기자동차 기술의 비약적 발전 따위는 양념이다. 즐거운 상상은 그렇게 끝없이 이어졌다. 이 모터의 규격을 키워가며 직렬로 연결해 기하급수적 ‘에너지 증폭’을 실현한다면, 수력발전소 일부만 남기고 모든 발전 설비를 없애도 된다. 원전 등을 둘러싼 현재의 사회적 논란은 물론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문제도 사라진다. 상상만으로도 반가운 장밋빛 꿈이다. 나라 밖으로 번져 지구적 에너지 혁명과 문명의 전환을 부를 만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꿈의 색깔이 바뀌었다. 당장 국제 에너지 시장에 요동과 공황이 밀어닥치기 십상이다. 산유국과 석유 메이저의 몰락이 불 보는 듯 뻔하고, 결코 강 건너 불로 끝나지 않는다. 뉴욕 증시에서 에너지 관련업체 주가가 폭락을 거듭하고, 그 여파는 곧바로 세계에 휘몰아친다. 국내 에너지 산업은 물론이고 애먼 산업까지 휘청거린다. ‘리먼 쇼크’가 가볍게 보일 정도의 충격파다. 그 파괴력은 ‘IMF 사태’ 당시 경험했듯, 서민에게까지 고루 미친다. 세계로 눈을 넓히면 일시적 ‘세상의 종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뻔한 상황 전개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과 그 정보기관들이 그냥 두고 볼까. 꿈에서 모터 제작자는 물론이고 관련 정보에 접한 몇 명은 그들의 위협과 추적에 한없이 시달렸다. 대한민국 정부가 국정원과 경찰을 동원해 보호막을 쳤지만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암살 전문가들에게 수시로 뚫렸다. 놀라서 꿈에서 깼다가 다시 속편에 빠져들기를 거듭했다.

짧은 휴가는 그렇게 끝났다. 현실의 일터로 돌아와서도 머릿속이 어지럽다. 꿈인 듯, 현실인 듯, ‘괴물 모터’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어쩔꼬!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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