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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깊은 맛, 불맛…인류의 여섯 번째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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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깊은 맛, 불맛…인류의 여섯 번째 맛은?

입력
2017.08.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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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모든 감각 행위는 뇌를 거쳐 인식으로 변환된다. ‘감각의 미래’는 감각과 인식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지과학의 최전선을 발로 뛰어 취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모든 감각 행위는 뇌를 거쳐 인식으로 변환된다. ‘감각의 미래’는 감각과 인식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지과학의 최전선을 발로 뛰어 취재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감각의 미래

카라 플라토니 지음ㆍ박지선 옮김ㆍ이정모 감수

흐름출판 발행ㆍ460쪽ㆍ1만9,000원

1990년대 방영된 한 조미료 광고의 유행어 중 “그래, 이 맛이야”가 있었다. 광고 모델이었던 배우 김혜자는 보글보글 끓는 국을 한 숟갈 맛 본 뒤 해탈한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저 말을 읊조렸다.

그 맛은 뭐였을까.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의 네 가지 기본 맛에 포함되지 않은 그 맛은 L-글루타민산나트륨, 즉 MSG 맛이었다. MSG의 독특한 감칠맛은 1908년 일본 도쿄제국대학의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에 의해 ‘우마미(旨味)’로 처음 명명됐다. 거의 100년 뒤인 1997년 미국 마이애미대의 두 과학자 니루파 차우드하리와 스티븐 로퍼는 혀의 특정 돌기가 L-글루타민산나트륨에 대해서만 반응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다섯 번째 맛 ‘우마미’라고 불렀다. 광고 속 ‘그래 이 맛’은, 당시 서구의 입장에선 미래의 맛이었다.

‘감각의 미래’는 감각과 인식의 한계를 탐험하는 인지과학의 최전선을 다룬다. 우리는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감각 행위를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이 모든 감각과 인식을 주관하는 것은 1.4㎏의 뇌다. 그렇다면 뇌는 어떤 원리로 외부의 감각을 받아들이고 다시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일까?

언론인이자 작가인 카라 플라토니는 캘리포니아대에서 보도와 글쓰기를 가르치다가 이 책의 집필을 위해 학교를 떠나 3년 간 미국, 독일, 영국을 누볐다. 신경과학자, 공학자, 심리학자, 유전학자, 외과의사, 트랜스휴머니스트(과학과 기술로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개선하려는 사람), 미래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최신 실험에 직접 참여했다.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동안 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뇌의 인식능력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감지하는 능력을 높이거나 그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저자의 호기심에 학계는 매번 기대 이상의 답변을 들려준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신체적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진통제가 실연이나 소외 같은 사회적 고통도 줄인다는 가설에 접근 중이고, 컴퓨터과학자들은 가상현실을 통해 참전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유하고 있었다. 식품과학자들은 벌써 우마미의 뒤를 이을 여섯 번째 맛을 즐기는 중이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에 이어 우마미가 인간의 ‘기본 맛’에 합류했다. 인류가 인정하게 될 여섯 번 째 맛은 무엇일까. 게티이미지뱅크
단맛, 쓴맛, 신맛, 짠맛에 이어 우마미가 인간의 ‘기본 맛’에 합류했다. 인류가 인정하게 될 여섯 번 째 맛은 무엇일까. 게티이미지뱅크

“뇌는 가상 경험과 실제 경험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절벽처럼 보이면 절벽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저자가 만난 인지심리학자 제러미 베일런슨은 가상세계 속에서의 경험이 실제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여럿 얻어냈다. 이를 테면 가상세계에서 나무를 베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 종이 소비를 줄였다. 가상에서 실제보다 더 잘생긴 아바타를 선택한 사람들은 현실에서 더 멋진 데이트 상대를 고르는 경향을 보였다.

베일런슨은 이를 근거로 가상현실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가상현실 속에서 우리는 통치자나 저격수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총격을 당하는 흑인, 강간 당하는 여자, 주인을 올려다 보는 강아지가 될 수도 있다. “연구 결과 (피실험자의) 아바타가 사람이면 사람에게 공감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인종 차별, 노인 차별, 성 차별을 줄일 수 있지요. 사람이 아닌 것에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까요?”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연 미래의 인격을 바꿀 수 있을까. 미래의 인격은 몰라도 미래의 맛은 확실히 바꿀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우마미가 다섯 번째 맛으로 ‘합류’한 이후 여섯 번째 맛에 도전하는 수많은 맛들을 만난다. 물맛, 불맛, 탄산맛, 지방맛 등 여러 후보들 중 가장 유력해 보이는 것은 코쿠미다. 우마미를 연구한 일본 식품회사 아지노모토의 대변인 요시다 신타로 박사가 처음 쓴 말로, 일본 음식뿐 아니라 아시아 요리 전체에서 발견되는 맛이다. “입 안 가득 풍부한 맛, 묵직한 맛, 깊은 맛”으로 표현되는 코쿠미는 주로 오래 조리하거나 숙성ㆍ발효시킨 음식의 맛과 연관이 있다.

저자는 서구의 학자들이 코쿠미를 분간하고 규명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이를 보는 한국의 독자들은 직감한다. 그것은 푹 끓인 맛, 자취하는 자녀의 집에 온 엄마가 찌개를 맛본 뒤 신경질적으로 가스레인지를 켜 30분 더 끓인 뒤에 나온 그 맛이다. 그럼 이게 미래의 맛일까. 앞뒤로 범람하는 미래가 독자들을 즐겁게 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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