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던 안희정이 폭발했다.
22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 북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상대방을 질리게 하는 태도로는 집권세력이 될 수 없고, 성공적인 국정운영도 불가능하다”는 격한 표현까지 쓰면서다.
“형제의 뺨을 때리는 것이라면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문 전 대표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자제해왔고, 경선 토론회 현장에서 여타 후보들끼리 얼굴을 붉히며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마다 “동지끼리 예의를 지키자”며 통합을 외쳤던 그였다.
‘충남 순둥이’라 불릴 만큼 격한 감정을 자제해왔던 안 지사는 왜 그토록 화가 났을까. 안 지사와 가까운 의원들과 캠프 관계자들은 “순간적으로 감정에 휩쓸린 격정 토로가 아니라, 수개월간 묵힌 작심 직언이었다”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 ‘앵그리 안희정’을 촉발시킨 계기는 전날 열린 MBC 토론회장에서 문 전 대표가 안 지사를 겨냥해 ‘네거티브 책임론’을 재차 꺼내 들면서다.
앞서 ‘반란군 우두머리였던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문 전 대표의 발언을 두고 양측 캠프가 이틀간 세게 붙은 상태였다. 안 지사 캠프가 먼저 문 전 대표의 발언을 문제 삼아 “그게 자랑일 수 없다. 광주 시민에게 사과하라”고 비판의 물꼬를 트며 선봉에 서자, 문재인 캠프 인사들은 곧바로 “네거티브를 중단하라”거나 “안희정이 바뀌었다”고 대대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이후 문 전 대표까지 “나를 향한 모욕”이라고 맞받으며 두 캠프간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자 안 지사는 의원멘토단에게 “아름답고 품격 있는 경선을 만들겠다. 네거티브로 흐르지 않도록 절제 있게 말하고 상대를 존중하자”고 다독였다. 확전을 자제할 것을 독려하며 문 전 대표 측에도 일종의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문 전 대표가 토론회에서 안 지사에게 재차 “혹시라도 네거티브 속삭이는 분 있다면 정말로 멀리하거나 단속하셔야 한다”는 등 네거티브 중단 요구를 거듭 하며 안 지사를 몰아붙이자 끝내 발끈한 것이다. 토론회를 끝마치고 충남 홍성 관저로 돌아오던 안 지사에게 문 전 대표는 또 한번 ‘확인 사살’을 했다. 문 전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선한 정치 이미지에 오점이 남지 않길 바란다”고 또 한번 안 지사를 겨냥하면서다.
안 지사는 이 순간 문 전 대표에게 크게 실망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선 혼자 고심 끝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는 게 캠프 관계자들이 전하는 ‘앵그리 안희정’ 사건의 전말이다. 캠프 인사들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는 분위기다.
이날 전북을 찾은 안 지사는 기자들과 만나 “서운함이 컸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안 지사는 “지난 두 달 동안 제 고의와 상관 없이 너무 오래 동안 두드려 맞고, 제 인생을 부정 당해서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며 “제가 그리 혼날 일이 아닌데, 소신 없고 무원칙한 사람으로 공격을 당했다”고 문 전 대표 측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토로했다. 안 지사는 “싸우자는 얘기가 아니라, ‘나도 이리 서운하다. 그러니 정책 대결 위해 힘 모으고 가자, 같은 당 동지로서 동지애 높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순히 감정적 서운함의 문제를 넘어선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 저변에는 문 전 대표의 부족한 포용의 리더십과 문 전 대표 주변의 패권주의에 대해 켜켜이 쌓아 놓았던 불만과 함께, 이대로 가서는 결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안 지사 캠프 관계자는 “선한 의지와 대연정 발언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문 전 대표와 문재인 캠프의 공격은 같은 당 후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도를 넘었다. 자기들이 하면 검증이고 우리가 하면 네거티브라고 무조건 힘으로 몰아치려는 그 오만함이 문제라는 것이다”고 문재인 캠프의 패권주의를 정면 겨냥했다.
안 지사와 안 지사 캠프 인사들은 함께 정치를 했던, 누구보다 안희정의 ‘야성’을 잘 아는 문 전 대표와 캠프 사람들이 “새누리당과 야합을 하려 든다”는 등 안 지사의 정체성을 공격하고 몰아붙이는 데 대해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그럼에도 꾹 참았다가 한마디 ‘지적’을 했더니 네거티브로 되받게 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안 지사 캠프 관계자는 “안희정 조차 품지 못하면서 어떻게 통합을 외칠 수 있냐”며 “안지사의 고민은 문재인을 이기느냐 보다, 우리가 정말 정권교체를 못할 수도 있다는 거다. 문 전 대표가 본선에 나가서 비문 후보한테 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고 했다.
안 지사 측 캠프에선 한발 더 나아가 문 전 대표가 30% 대 지지율이 흔들리자 전두환 표창 논란을, 네거티브 책임론 공방으로 돌리려 한다는 의심도 하고 있다. 캠프에선 “문재인 캠프가 안희정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일부러 싸움을 걸었다” “안희정을 제물로 바치려고 작정하고 나온 것” “문 전 대표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양측 캠프는 그럼에도 확전은 자제했다. 두 사람은 공히 “우리끼리 한 팀이 돼야 한다 내부적으로 균열이 되는 일이 있어서 안 된다”(문재인)거나 “물론 우리는 한 팀이다. 민주당과, 국가 국민 이름으로 단결 시키고 정책으로 우리가 더 대화하고 단결하자는 마음은 똑같다”(안희정)고 뒤늦게 봉합에 나섰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이미 “두 사람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거나 “상처가 커 새 살이 돋기 어려울 것이다”는 얘기 마저 나온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선한 의지’를 갖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둘 다 죽는 경쟁이 아니라 둘 다 사는 경쟁을 해야 한다. 지금 가장 웃고 있을 사람은 안철수가 아니겠냐”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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