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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위안부, 다시 ‘골대’를 확인하자

입력
2017.02.0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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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일본이 한국 주재 대사를 불러들인 지 꼭 한 달이 지났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년이든, 반 년이든 상관없다. 소녀상이 철거될 때까지 돌려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뒤늦게 대응조치로서 주일 대사의 소환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사태를 진정시킬 정치적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기 싸움만 치열하다.

보다 심각한 일은 양국 국민감정마저 어긋날 대로 어긋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압도적 다수는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를 지지하고 있다. 거의 80%에 가까운 일본인은 한국을 외교나 경제활동의 상대로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반한(反韓) 여론에 편승해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치솟았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촛불 민심으로 달아오른 한국에서는 이런 일본 측 대응이나 분위기에 대해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여론이 주류인 듯하다. 한일 외교당국 모두 국내정치에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일관계를 되돌아보면 주한 일본 대사의 공백이 이처럼 오래 지속된 건 전례가 없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양국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도 일본은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지만 12일 만에 복귀시켰다. 2005년 독도 영유권 논쟁 때도 일본은 대사를 불러들였지만 곧 돌려보냈다. 일본이 소녀상 문제 하나로 통화 스와프 협상 등을 취소한 데 이어 한 달 넘게 대사를 불러들인 것은 관례를 무시한 과잉대응이자, 뭔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놀라운 일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본이 한국에 대해 마치 ‘피해자 코스프레’를 연출하는 전대미문의 한일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에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한국이 외교공관을 보호해야 하는 국제법을 위반해 일본이 피해를 봤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 많은 일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일본이 근거로 드는 1961년의 빈 협약 등이 소녀상 등 조형물 설치에도 적용되는지, 2015년 말의 위안부 합의 때 한국 정부가 정말 소녀상 철거에 이면 합의했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번 사안이 대사를 장기간 불러들일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다.

결국 일본은 소녀상을 빌미로 ‘골대’를 옮기는 데 일단 성공한 듯하다. 그동안 일본은 한국 측이 정권교체에 따라 수시로 ‘골대를 옮긴다’고 비난해 왔는데, 정작 이번에는 일본 스스로가 공관보호라는 곁가지 쟁점으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뒤엎는 일종의 프레임 전환을 도모한 것이다. 이 프레임은 한국 외교부가 “공관 앞 조형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본 측 주장을 어설프게 거들면서 거의 기정사실화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녀상’이라는 명칭 대신 ‘위안부상’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까지 나섰다. 일본 측의 외교공관 보호 프레임이 일본의 법적 책임과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마저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당분간 한일관계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한국 내 보수 일각에서는 북한 위협이나 트럼프 정권의 등장 등 불확실한 국제정세를 앞세워 어떻게든 서둘러 한일관계를 수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피해자 코스프레를 지속하는 한 한일 간 틈은 메워지기 어렵다.

‘골대’가 바뀌었으면 다소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더라도 바로 세우는 게 정석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노골적으로 이 사안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아베 정권의 비상식적 외교 행위에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동준 기타규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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