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의원과 SNS로 자료 공유하고
‘릴레이’ 사이트에 응원 글 1만개
국회 앞 시민 필리버스터 동참도
테러방지법은 물론 정치 관심 불러
“국회의원들이 몸싸움 하는 것만 보다가 우리나라에서도 필리버스터로 법안 통과를 막겠다는 걸 보니 정치 선진국에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정치학 교과서와 미국 드라마에나 나오던 필리버스터를 실제로 보니 신기하네요.”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이하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23일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filibusterㆍ무제한 토론을 통한 입법 지연 전술)가 온ㆍ오프라인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입법으로 재도입된 필리버스터 제도가 테러방지법 및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도 환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온라인에선 ‘필리버스터’ 용어와 의원 관심 급증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본회의 필리버스터 이후 52년 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를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온라인에서 즉각적으로 폭발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는 필리버스터라는 단어와 장시간 국회에서 연설한 김광진,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이름이 상위권에 올랐다. 시민들은 처음 목격한 필리버스터에서 정치다운 정치를 봤다며 호응했다. 직장인 윤유리(27)씨는 “의원들이 자료를 꼼꼼히 준비해 와 긴 시간 동안 조목조목 법안에 반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다양한 응원이 이어졌다. 시민들이 직접 글을 남길 수 있는 ‘필리버스터 릴레이’ 사이트(http://filibuster.me)도 개설됐다. 임시국회 폐회 전까지 사이트에 관련 자료나 시민들의 의견을 게재한 뒤 의원들에게 전달해 국회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읽게 한다는 취지다.
24일 오후 현재 이 사이트에는 응원 글을 포함해 1만개에 달하는 의견이 게시됐다. 야당 의원들이 SNS에 “테러와 국가정보원 관련 자료를 공유해 달라”고 올린 글에 네티즌들은 적극적으로 각종 언론기사와 논문 등을 올리는가 하면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는 ‘테러방지법 무엇이 문제인가’와 같은 분석글이 크게 늘었다.
참여연대 등 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22일 온라인에 개설한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긴급서명’도 국회 필리버스터 진행 후 서명자가 급증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필리버스터 이후 몇 시간 만에 서명자가 갑자기 늘어 24일 낮 12시 기준으로 13만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필리버스터가 테러방지법 자체 관심 환기까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시민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참여연대 등은 23일 저녁 8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동 국회 정문 앞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반대 시민 필리버스터’를 진행 중이다. 24일 국회 앞 시민 필리버스터에 참석한 대학생 이일환(26)씨는 “인터넷에 시민들의 참여를 장려하는 글을 보고 일부러 찾아왔다”며 “전공이 정보통신(IT) 분야인데 무고한 시민 사찰 등 이 법안에 권력 남용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직접 방청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는 인원들도 늘었다. 특히 국회에서 촉발된 필리버스터 열기는 인권 침해 소지 등 테러방지법 내용 자체에 대한 관심도 끌어올렸다. 7세, 9세 두 아이를 데리고 국회 앞 현장을 찾은 이정은(41)씨는 “원래는 테러방지법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SNS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 테러방지법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 필리버스터는 시민들이 지금껏 제대로 된 논의 과정 없이 진행된 법안 처리에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게 하는 자극제가 됐다”며 “시민 필리버스터는 건강한 시민운동이면서 처절한 고발이기도 한데 테러방지법에 대한 관심 환기는 확실하게 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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