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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ㆍ비용 줄인 입체음향, 기술력으로 돌비와 맞서

입력
2018.01.08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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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피사체를 소리가 따라가

영화서 생동감 넘치는 음향 구현

최근 6년간 돌비와의 국내 경쟁

작품 적용 53:3으로 우위 점해

돌비가 잡고있는 유통구조 뚫고

UHD방송ㆍVRㆍ게임 등 콘텐츠에

자사 기술의 소리 입히는 게 목표

3일 서울 신사동 CGV 청담씨네시티 건물 4층에 위치한 소닉티어의 개인용 극장(프라이빗 시어터)에서 박승민(왼쪽), 박준서 소닉티어 공동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닉티어는 통합 음향 알고리즘 개발사로 극장과 방송, 소프트웨어(앱)에서 음향을 만들고 재생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3일 서울 신사동 CGV 청담씨네시티 건물 4층에 위치한 소닉티어의 개인용 극장(프라이빗 시어터)에서 박승민(왼쪽), 박준서 소닉티어 공동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닉티어는 통합 음향 알고리즘 개발사로 극장과 방송, 소프트웨어(앱)에서 음향을 만들고 재생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일단 들어보시죠.”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소닉티어의 개인용 극장(프라이빗 시어터)에서 만난 박승민, 박준서 공동대표는 ‘소닉티어의 기술’을 묻자 대뜸 영화부터 틀었다. 스크린에 등장한 장면은 영화 ‘베테랑’ 속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와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의 격렬한 주차장 격투신. 오가는 주먹질 속에서 치고, 받고, 넘어지고, 기둥에 부딪혔다가 달아나길 반복하는 영상이 두 번 연달아 상영되자 둘의 차이가 단번에 드러났다. 소닉티어의 기술이 적용된 영상에선 얻어맞은 인물이 기둥에 등을 부딪친 뒤 땅으로 엎어질 때, 달아나는 차량이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 출구로 빠져나갈 때와 같이 사방으로 움직이는 스크린 속 피사체를 소리가 절묘하게 따라붙었다. 생동감 넘치는 음향이 무엇인지 자신 있게 보여준 소닉티어는 여러 개 채널(다채널)로 음향을 제작, 송출, 재생하는 솔루션을 확보한 음향 알고리즘 개발사다.

지난 30여년 간 전 세계 음향 시장은 ‘돌비 왕국’이었다. 5개 채널로 녹음한 음향신호를 분리해 5개의 독립된 스피커와 1개 서브 우퍼로 출력하는 ‘5.1채널’이 전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고, 1980년대 말부터 돌비가 이 오디오 시스템 특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허 만료와 함께 5.1채널 시대가 저물기 시작하자 돌비 왕국은 다채널 음향 시장을 선점하려는 업체들의 치열한 격전지가 됐다. 다양한 음향 기술 기업들이 뛰어들었지만 제작부터 송출, 재생까지 가능한 통합 알고리즘 회사로 살아남은 곳은 돌비와 미국 DTS, 그리고 소닉티어 3곳이다.

골리앗들의 전쟁터에서 당당히 살아남은 다윗 소닉티어의 생존 비결은 단연 ‘기술력’이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중국 캐나다 인도 호주 등에서 60여개 특허를 쉼 없이 출원했다. 핵심 특허는 기존보다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진정한 입체음향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소닉티어의 소리는 위, 아래로도 움직인다. 주인공이 스크린 좌측 위에서 우측 아래쪽으로 달려가며 말을 할 때 기존에는 소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만 움직였지만, 소닉티어 방식을 적용하면 소리가 대각선 모양을 그대로 따라간다. 박준서 대표는 “사람은 소리의 70~80%를 앞쪽으로부터 받아들여 앞쪽 소리의 움직임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소닉티어는 채널 개수만큼 다양하게 소리를 뿌려 물결 모양으로 움직이는 피사체도 소리가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채널 기반인 소닉티어와 달리 현재 돌비는 ‘메타데이터’ 방식을 쓰고 있다. 소리의 위치를 지정하는 좌푯값을 일일이 입력한다고 보면 된다. 박준서 대표는 “음향 감독은 자신의 직업을 음향 디자이너라고 인식한다”며 “소닉티어가 채널 수만큼의 그림물감을 손에 쥐여준다면, 미세한 위치를 일일이 찍어야 하는 돌비의 메타데이터는 그림으로 치면 ‘점묘파’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돌비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개발한 소닉티어의 기술은 극장가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최근 6년 동안 돌비와 소닉티어는 한국 영화 시장을 두고 치열한 ‘소리 전쟁’을 펼쳤다. 결과는 53대 3. 2012년 ‘광해’를 시작으로 ‘명량’ ‘공조’ ‘꾼’까지 소닉티어 입체음향 솔루션은 53개 영화에 적용됐으며, 돌비 기술 적용 작품은 3개에 그쳤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전국 극장 20관에 소닉티어 시스템이 설치돼 있고 일본 오사카, 서울 동대문 등 6곳의 공연장에선 소닉티어 기술을 거친 음향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준서 대표는 “메타데이터로 작품 하나 만들려면 음향감독 3명이 매달려도 두 달 걸리지만 소닉티어는 1명이 3, 4일이면 거뜬하다”며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음향감독들과 Y축까지 활용하는 생생한 입체음향을 원하는 극장들이 소닉티어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닉티어는 극장에서 검증받은 기술로 초고화질(UHD) 방송, 음원 스트리밍, 1인 미디어, 가상현실(VR), 게임 등 콘텐츠까지 자사 기술로 만든 소리를 입히는 게 목표다. 아직 5.1채널 방식을 쓰고 있어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극장(56조원)과 방송용 음향 소프트웨어(13조원) 등 잠재 시장 규모가 69조원에 달한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소닉티어가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돌비가 꽉 잡고 있는 유통 구조를 뚫고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다. 박승민 대표는 “30여 년 동안 돌비에 매여있던 업체들을 소닉티어로 끌어오기 위해선 아직 돌비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 소비자 시장부터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출시를 앞둔 대표적 제품이 개인이 소프트웨어(앱)만 설치하면 소리를 입히는 편집 등을 할 수 있고 작업이 끝난 영상을 저장, 재생, 공유까지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미 개발은 끝났고 올해 초 안에 출시하기 위해 구글과 협력 중이다. PC의 개인화로 마이크로소프프트의 워드가 전 세계의 문서 제작 툴(도구) 시장을 장악한 것처럼, 소닉티어의 제품이 개인화되는 음향 제작 시장의 기본 툴로 자리잡도록 할 것이란 포부다.

박승민 대표는 “누구나 간단한 조작만으로 깊이 있고 입체감 있는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닉티어 앱의 편리성을 앞세워 돌비와 본격 경쟁을 시작한다”며 “올해 안에 소닉티어는 할리우드에 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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