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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촛불 대선’의 시대사적 의미

입력
2017.05.0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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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항상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지난 18대 대선은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야당의 어젠다를 선점해 승리했다. 17대 대선은 BBK 사건이 터졌는데도 이명박 후보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기업인 출신 이명박을 당선시켰다. 19대 대선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대통령을 파면한 결과다.

1987년의 6월 대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가져온 시민혁명으로서 민주적 절차의 확립이라는 최소한의 민주화가 목표였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헌정 사상 초유로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이끈, ‘촛불’로 상징되는 민심은 고착화된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의 타파와 양극화 해소를 통한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19대 대선의 시대정신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선은 이러한 시대정신에 조응하며 진행됐는가.

어느 선거보다도 엄중한 시대정신이 지배하는 선거였음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시대에 중첩적으로 쌓여온 정치와 경제의 부정의한 유착에 대한 성찰도, 구조적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도 선거공학에 밀려났다. 혁명적 사고가 전제돼야 하는데도, 압축성장 과정에서 공고화된 수구 기득권의 해체 논의는 ‘미래’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에 묻혔다. ‘적폐청산’은 선거 초반부터 아예 금기시됐다. 대선에서 ‘촛불시민혁명’ 정신은 시대정신으로 승화되지 못했고, 선거를 관통하는 어젠다로 자리매김하지도 못했다.

촛불대선이라고 해서 선거공학과 네가티브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다자대결 구도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프레임 전쟁은 더욱 기승을 부렸고, 여전히 ‘종북좌파’라는 역사의 유물이 된 안보보수에 기대어 표를 구걸하는 수구적 사고가 전통적 보수라 불리는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역대 대선보다 더 많이 대형 어젠다가 생략됐고 선거는 수미상관하게 프레임과 구도로 일관했다.

표의 확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문재인은 순환출자 등 재벌 개혁에서 지난 대선 공약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안철수는 막판에 개혁공동정부 구상을 밝히고 임기단축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종인 전 대표는 홍준표와도 같이 할 수 있다고 했다. 안철수는 이에 반대했다.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투트랙 인지는 모르겠으나 유권자는 혼란스럽다. 누구 말을 듣고 투표해야 하는가. 선거막판까지 반문연대를 기치로 합종연횡의 시도는 끊이지 않았다. 극우적 발언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움츠러들었던 보수를 결집시키려는 홍준표와, 일관되게 노동의 가치를 설파하고 선명한 진보적 어젠다로 승부하려는 심상정은 일관된 이념 지향을 고수했다. 유승민은 경제 및 복지에서 전향적 공약을 내세웠음에도 안보 이슈에서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는 한계를 보였다.

사상 유례없는 촛불혁명의 결과 탄생하는 정권이 어떠한 정책지향을 보일지, 어느 정파와 어떤 방식으로 연합정치를 펼쳐나갈지에 따라 정치지형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후보들이나 정당은 입만 열면 통합을 말한다. 포용을 얘기한다. 통합과 포용의 시대사적 의미에 대한 논쟁은 찾아볼 수 없다. 철저하게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농단한 반역사적 세력과도 통합을 위해 포용하는가.

국민과 대의명분쯤은 눈 앞의 실리 앞에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바른정당의 탈당 의원들도 통합의 대상이라면 선거는 왜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정농단의 세력적 기반이 됐던 정파와의 연대는 민심과 배치된다. 탄핵에 찬성했으면 모두 연대의 대상이라는 반시대적 발상을 가지고서는 촛불이 요구했던 시대정신에 부합할 수 없다. 국민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에 입각한 정권이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제도적 개혁을 추동한다면 정치공학적 의석수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 다시 촛불민심의 시대사적 함의를 곱씹어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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