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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 부실수사, 법원은 오판… 18년 만에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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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 부실수사, 법원은 오판… 18년 만에 바로잡았다

입력
2018.03.27 17: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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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경찰, 2003년 진범 잡았지만

검찰은 물증 부족 이유로 석방

누명쓴 소년 10년 억울한 옥살이

만기출소 뒤 재심 끝 무죄 판결

2016년 진범 다시 체포해 기소

대법, 15년형 선고한 원심 확정

전주지법 군산지원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 등이 17년 전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사건'에 대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주지법 군산지원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 등이 17년 전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사건'에 대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강도살인’ 사건 진범이 법의 심판으로 마침내 분명히 가려졌다. 수사기관의 강압ㆍ부실 수사와 법원의 느슨한 판단으로 다방 오토바이를 몰던 16세 소년이 억울하게 꼬박 10년 옥살이를 당한 비극적 사건이 매듭지어졌다. 사건 발생 18년 만으로 너무 늦은 정의의 실현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7일 강도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37)씨 상고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은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벌어졌다.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씨는 운전석에서 흉기에 잔혹하게 찔린 채 발견됐고, 병원에 이송됐지만 숨졌다.

다방 배달 일로 오토바이를 몰다가 사건 현장을 발견한 최모(34ㆍ당시 16)씨는 목격자로 사건 당일 경찰에 불려가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최씨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수사를 이어갔다. 경찰은 최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유씨에게 욕설을 듣자 택시를 추월해 세운 뒤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씨는 사망 전 무전으로 “약촌오거리 강도”라고 외쳤다. 금품을 노린 강도에게 당했다고 알렸음에도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 살인으로 보고 최씨를 옭아맸다. 피해자는 12차례나 식칼에 찔렸지만 당시 최씨 몸과 옷에선 혈흔이 발견되지도 않았다. 경찰과 검찰은 허술하게 수사해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부실한 정황 증거와 진술만으로 최씨에게 2001년 2월 징역 15년, 그 해 5월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최씨는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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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03년 경찰이 ‘약촌오거리 진범이 따로 있는데, 임○○이란 사람이 잘 알고 있다’는 첩보를 듣고 사건은 반전의 계기를 맞았다. 임씨는 후에 진범으로 확인된 김씨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경찰에서 “김씨가 피 묻은 칼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고 진술했고, 임씨 진술을 전해들은 김씨는 순순히 자백해 그 해 6월 5일 긴급체포됐다. “많이 후회된다. 모든 것을 밝히니 후련하다”는 말도 남겨 경찰이 본격적인 재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김씨와 그를 숨겨준 임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구체적 물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최씨가 옥살이 중인 터라 진범을 다시 잡는다면 이전 수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장 기각 뒤 김씨와 임씨는 완전히 달라졌다. 동시에 정신병원에 입원하더니 경찰에서 한 진술은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며 번복했다. 검찰은 김씨를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다.

결국 최씨는 만기 출소했다. 그는 2013년 경찰 강압에 못 이겨 허위 자백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6년 11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최씨의 자백이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최씨가 누명을 벗자 경찰은 다시 김씨를 체포하고 검찰은 그 해 12월 김씨를 구속 기소했다. 1ㆍ2심은 김씨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1심은 “이런 불행한 결과는 법원과 수사기관의 잘못된 판단에 기인한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8월 약촌오거리 사건을 지목해 사과하기도 했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을 검찰권 남용 및 인권침해에 따른 재조사 대상 12건에 포함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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