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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진실을 추구한 법정 영화 3

입력
2017.02.2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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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
영화 ‘재심’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법은 과연 만인에게 평등한가. 영화 ‘재심’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영화는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목격자였던 10대 소년이 경찰의 강압수사와 증거조작에 살인범으로 몰리고 10년 뒤 감옥에서 나와 한 속물 변호사와 함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법은 진실을 외면한다. 권력은 정의로 둔갑한다. 그 누구도 억울한 약자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도 영화 촬영 도중 실제 사건의 재심이 결정됐다. 30대 가장이 된 사법피해 소년은 지난해 11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진범도 붙잡혔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면서도 24일까지 150만 관객이 ‘재심’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진실에 대한 갈증과 열망이 투영된 숫자다.

‘재심’의 감동을 이어갈 또 다른 영화들을 골랐다. 돈과 권력에 맞서 약자를 대변하고 사법정의를 추구한 이들의 이야기다.

영화 ‘변호인’
영화 ‘변호인’

변호인(2013)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을 얘기하는 이 대사가 이토록 큰 울림을 안기는 건, 국가의 안위라는 명분 앞에 상식이 처참히 짓밟히는 장면을 현실에서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변호인’은 이 상식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법정 드라마다. 5공 시절 대표적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과 당시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모티브로 했다. 속물적인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이 과거에 신세를 졌던 국밥집 주인 순애(김영애)의 부탁에 그의 아들 진우(임시완)가 연루된 시국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진우를 면회한 뒤 충격에 휩싸인 우석은 본격적으로 법정 투쟁을 벌인다. 재판 결과가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법과 상식으로 맞서는 우석의 변론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특히 3분간 롱테이크(편집 없이 길게 촬영하는 것)로 찍은 우석의 2차 공판 변론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구속된 우석을 변호하기 위해 부산 지역 99명의 변호사가 법정에 출석한 장면에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장면도 노 전 대통령의 실화다.

이 영화에 1,000만 관객이 환호했다. 그리고 실제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2014년 재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기까지 30년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영화 개봉 후 뜻하지 않은 후폭풍이 들이닥쳤다. 배급사 NEW는 정권에 찍혀 세무조사를 받았고, 이 영화에 투자했던 CJ창업투자는 사명을 바꾸며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세월호 진상조사 요구에 동참했던 주연배우 송강호와 연출자 양우석 감독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영화 밖 한국 사회는 군부독재 시절로 퇴행하고 있었다.

영화 ‘도가니’
영화 ‘도가니’

도가니(2011)

청각장애아동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교장과 교직원들이 수년간 벌인 집단 성폭력과 아동 학대를 세상에 고발하는 영화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바탕으로 공지영 작가가 쓴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영화가 담아낸 현실은 끔찍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교문 밖 세상은 눈 감고 귀 닫았다. 학교와 긴밀히 얽힌 지역 사회는 물론이고 약자들을 도와야 할 경찰과 검찰, 법원, 지자체, 종교계도 한통속이 돼 철저히 진실을 외면했다. 닫힌 교문 안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형편이 어려운 할머니가 학교의 회유에 돈을 받고 고소를 취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해 아이가 자신은 용서하지 않았다며 몸부림 칠 때 관객들은 무력함과 참담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양심적인 교사들은 끝까지 법정 투쟁을 벌이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실제 광주 인화학교 가해자들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또는 집행유예를 받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법의 보호망은 유독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헐겁다.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460만 흥행을 하면서 우리 사회는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당시 사건이 재조명됐고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재수사가 시작됐고 아동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으며 일명 ‘도가니법’이라 불린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등이 뒤따랐다. 늦었지만 유의미한 변화였다. 그러나 사건 피해자들은 국가배상 소멸시효가 지났거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끝내 손해 배상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느리지만 변하고 있다. 폐교된 광주 인화학교 부지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장애인 인권복지타운이 들어설 예정이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도가니’가 보여줬다.

영화 ‘소수의견’
영화 ‘소수의견’

소수의견(2015)

도심 재개발 지구의 강제 철거 현장에서 철거민의 어린 아들과 20대 전경이 사망한다. 전경을 죽인 현행범으로 체포된 소년의 아버지 박재호(이경영)는 아들을 죽인 건 철거깡패가 아니라 경찰이라며 정당방위를 주장한다. 박재호의 변호를 맡게 된 2년차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은 경찰과 검찰의 사건 은폐 움직임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걸 직감하고 국민참여재판과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으로 맞선다.

영화는 변호인단과 검찰의 숨 막히는 법정 공방에 카메라를 비춘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세련된 연출로 빚어진 사실적인 법정 묘사는 관객들이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게 진실을 마주하도록 이끈다. 권력이 힘을 남용했을 때 어떤 파장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면서 영화는 끊임 없이 현실을 반추한다.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가 법정에서 동병상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국가 권력의 폭력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관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서울 용산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민에 대한 강제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실화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고 배우와 감독도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는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영화를 둘러싼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배우들의 호연은 흠잡을 데가 없었고 오랜만에 잘 만든 법정 드라마라는 호평도 받았지만, 미심쩍은 이유들로 개봉이 2년이나 미뤄졌다. 외압설까지 돌았다.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에서 손을 떼면서 하염없이 표류하던 영화는 시네마서비스가 뒤늦게 배급을 떠맡으면서 어렵게 개봉했다. 하지만 개봉관도 적었고 상영시간 배정도 불리했다. ‘소수의견’ 개봉관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다는 원성이 빗발쳤다. 정권의 심기를 거슬리는 민감한 소재라 배급사와 극장이 눈치보기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영화계 안팎에서 불거졌다. 누적관객수 38만명. 이렇게까지 실패할 영화는 아니었다.

한국 사회는 정의와 진실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여정을 걷고 있다. 진실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는다. 지금 ‘소수의견’을 다시 꺼내 봐야 하는 이유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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