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개정안 거부권행사 강행으로 정국이 대혼돈 상태에 빠졌다. 야당은 국회와 야당, 국민을 무시한 폭거라며 국회 의사일정 전면거부 등 강력한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여당은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며 거부된 국회법개정안을 재의에 부치지 않기로 했다지만, 내부적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기류가 역력하다. 당청관계 악화는 물론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 등을 둘러싸고 친박_비박계 간 갈등 증폭은 불 보듯 하다.
우리는 24일자 본란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메르스 사태 대응과 경제활성화에 집중해야 할 국가ㆍ사회 역량을 흩뜨려 그 자체로 국가적 위기가 된다며 법안을 수용하는 정치적 금도(襟度)를 발휘해줄 것을 간곡하게 촉구했다. 당장 격렬한 정국 대치와 격동은 당분간 모든 민생현안과 대외현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대통령의 이번 선택을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번 국회법개정안이 정부 입법권과 사법부 심사권을 침해하고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행정업무를 마비시켜 국가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법학자 등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린다. 행정부의 입법권은 국회가 위임한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만큼 행정입법이 위임 범위를 넘지 못하도록 국회가 감시ㆍ통제하는 것이야말로 3권분립 원리에 합당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래도 정 문제가 있다면 법안 공포 뒤 정식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 판단을 맡기는 게 헌법수호 책무가 있는 대통령으로서 합당한 처리였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불만족스럽더라도 차선을 택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며 때로는 거래도 하는 정치력과 통 큰 리더십은 찾아보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초선 의원 시절인 1998년 이번 국회법개정안보다 훨씬 강력한 행정입법권 통제법안 발의에 참여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느 위치에 있든 타협과 조정을 배제한 채 내 주장만 옳다는 인식은 독선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에 기대어 시급한 경제ㆍ민생 관련 법안을 정략과 연계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스스로는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정치적 반대편을 설득하는 노력을 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야당 대표시절 민생과 무관한 사학법 개정 등과 관련해 2개월여나 장외투쟁을 벌이며 국회를 전면 보이코트 했던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치적 배신 운운은 유승민 원내대표 등 여당 내 비박 인사들을 겨냥한 발언이겠지만 이런 표현 또한 자제했어야 옳다. 대통령으로서 이 같이 격하게 감정을 공개적으로 토로하는 게 합당한 것인지는 차치하고라도 그 배신은 뒤집어 협량과 포용력 빈곤을 뜻하기도 한다. 이제 향후 정국은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조차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정쟁 속에서 헛되게 보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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