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귀국 6시간30분 만에
靑, 안심번호 공천제 신속 저지
"與 의원 줄서기 유도 아니냐"
김무성 대표에 의심 눈초리도
청와대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여권의 공천전쟁에 막이 올랐다. 그 동안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 드라이브에 침묵하던 청와대가 정면 대응으로 선회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실렸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행보를 둘러싼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저지 움직임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강경했다. 청와대가 ‘관계자’의 입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낸 것은 박 대통령이 새벽 5시20분쯤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한 지 약 6시간30분 만이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공천 논란과 관련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오전 8시20분인 것을 감안하면, 약 3시간 30분 만에 청와대의 기류가 ‘정면 대응’으로 바뀐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민 대변인의 브리핑을 보고받은 뒤 “그 정도 수위로는 안되겠다”면서 다른 참모인 고위 관계자를 춘추관으로 보내 정면 대응을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청와대는 공천 룰 싸움이 정국의 화두로 떠올라 노동개혁이나 경제살리기 등 국정 과제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을 우려해 이례적인 강공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의원들이 자신들의 생사가 걸려 있는 공천 문제와 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돌아갈 것이 뻔한 개혁 과제 중 어디에 신경을 쓰겠느냐”면서 “대통령 임기가 절반 가까이 남은 시점에 ‘다 떠나고 소는 누가 키우나’하는 무기력한 상황이 닥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또 김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갑자기 들고 나온 의도 자체가 불순하다고 보고 있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나 오픈프라이머리 등 국민경선 공천 방식은 현역 의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만큼, 김 대표가 여당 의원들의 줄서기를 유도한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여권 핵심 인사는 “국민경선 공천으로 내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의원들은 김 대표에게 빚을 지게 되는 반면, 청와대엔 각을 세우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략공천 카드를 호락호락 내줄 수 없다는 점도 청와대를 서두르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 안정적인 국정 운영과 안전한 퇴임 이후를 담보하려면 박 대통령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을 검증된 인사들에게 의원 배지를 달아주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청와대와 친박계의 판단이다. 특히 대구를 비롯한 영남지역의 공천에는 퇴임 이후 박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달려 있다. 청와대가 국민경선 공천에 반대하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인데도 김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한 것을 청와대는 선전포고이자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청와대가 김 대표를 공개적으로 제압하고 나선 것은 끝까지 힘 있는 현재 권력으로 남겠다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이 개헌론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김 대표가 중국에서 개헌론을 제기했을 때도 청와대에선 ‘관계자’가 나서서 “여당 대표가 실수로 언급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압박했었다. 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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