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강원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2016 세계명상대전’ 행사 일환으로 열린 ‘세기의 무차(無遮) 토론’(본보 27일자 25면 참조) 무대에서는 청중을 아연하게 한 장면이 연출됐다. 토론에 불려 나온 태국 명상 스승 아잔 간하 스님이 “모두 다 진리에 들어간다”며 굳이 수행 방법을 논쟁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자, 한국 주최 측의 한 스님이 돌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시작한 것. 삼배를 마친 그는 “부디 한 말씀 들려달라”며 주최측을 대표해 그에게 논쟁에 동참해 줄 것을 청했다.
이날 토론은 태국과 한국 불교의 대표적 스승인 세 사람(태국 불교의 큰 스승이자 숲속 은둔자 아잔 간하 스님, 영국 케임브리지대 물리학도이자 호주 출신으로 태국 아잔 차의 수제자인 아잔 브람 스님, 한국 불교계 대표 선승 혜국 스님)을 한 자리에 모아 수행법을 이야기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주최측은 이 이벤트를 불교 유명 스승들이 서로의 수행 방법론을 두고 벌이는 “세기의 토론”으로까지 명명했다.
하지만 아잔 간하 스님은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아잔 브람 스님도 이를 옹호했다. “주최측의 간곡한 요청으로 행사에 참석은 했으나 선진국인 한국에 불교 수행을 장려하고 싶어 왔을 뿐”이라는 아잔 간하 스님은 계속 논쟁에 뛰어들 것을 요구 받자 “어떤 깊은 법은 말을 계속하면 사람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킨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주최측의 한 한국 스님이 ‘삼배 간청’에 나섰던 것이다. 이 돌발 간청에 청중석에서는 “헉”하는 외마디 탄식들이 터져 나왔고, 무대에 있던 아잔 간하, 아잔 브람 스님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토론 참석자들이 각자 생각하는 명상의 가치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며 분위기가 진정되긴 했으나 “토론을 위해 답해달라” “무의미하다”는 양측의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결국 방법론을 놓고 벌이는 “세기의 토론”도 사실상 무산됐다.
어색하게 마무리된 이 이벤트 이후 일각에선 ‘처음부터 이런 겨루기가 왜 필요했냐’는 회의가 나왔다. 한국 불교가 정통으로 인정하는 간화선과 태국 미얀마 등 남방 불교의 수행법 우열을 따지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한국 불교 주류에서는 통찰, 명상을 중시하는 소위 남방불교의 ‘위빠사나’를 기초적인 수행법으로, “화두를 보는 수행으로, 화두 속에 사무치게 들어가 모든 생각과 판단의 작용을 끊는” 간화선은 핵심적, 최종적 수행법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즉 ▦인도, 태국, 미얀마 등의 수행법 ▦중국의 선종 ▦중국 선종에서 비롯된 간화선 등이 추구하는 바가 모두 다른데, 이 중 간화선을 최우위에 놓는 셈이다.
이를 두고 한 스님은 “태국 스님들의 태도에 공감한다”며 “수행법 논쟁은 마치 어느나라 음식이 더 맛있냐, 어떤 꽃이 더 훌륭하냐 따지는 논쟁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처한 환경이, 취향이, 놓여있는 마음 상태, 습관이 모두 다른데 각자에게 어떤 것이 더 유용하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며 “이를 옳고 그름, 우열의 문제로 논쟁하는 것은 위험하며 사뭇 폭력적”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스님은 “대중 앞에서 수행론을 대화하고 토론한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옳고 그른 문제로 접근하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며 “서로의 구현 방법을 논쟁하기보다 그대로 인정, 존중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한국 불교의 ‘간화선 제일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연 “간화선이 가장 우수하다. 다른 방법으로는 최고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태도가 불교적이냐는 의문이다. 한 스님은 “수행을 가로막는 두 장애인 번뇌장(煩惱障ㆍ분노 슬픔 우울 등 감정적 장애)과 소지장(所知章ㆍ오도된 세계관, 존재관 등 지적 장애) 중 소지장에 더 중점을 둔 것이 간화선인데, 이는 일상생활을 하고 직업을 가진 대중에게 뿌리내리기 어려운 수행법이라는 평가도 있다”고 했다. 또 “스님들조차 공부에 진전이 없어 티베트, 미얀마, 태국 등의 수행센터에서 즉각 효과를 보는 명상을 공부하는 이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굳이 우리의 답을 가지고 뭐가 옳으냐 겨루는 게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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