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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는 지키고 삽시다

입력
2016.07.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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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는 지키고 삽시다

김범수 문화부장

여행은 쉬기 위해 떠나는 사람에게만 아니라 그들이 도착하는 지역 경제에도 도움된다. 관광객이 몇 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낸다거나, 이런 돈벌이를 위해 뭘 더 준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마다 한 사람이라도 관광객을 더 받아들이기 위해 안달복달한다. 가능하면 관광객의 편의를 생각해 진입 장벽을 낮춰주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이미 최대 관광객이 된 중국인을 어떻게 하면 더 유치할 수 있을까 늘 고민이다. 문제는 이들을 맞는 방식이다.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나다 보니 준비 안 된 채로 이들을 맞고 있다고 느낄 때가 더러 있다. 최근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관광버스 불법 주차가 그런 경우다.

버스로 몰려드는 관광객을 모시고 갈 곳은 대개 정해져 있다. 유적이나 맛집이 있는 관광명소이거나 기념할만한 쇼핑이 가능한 어떤 곳이다. 문제는 국내의 경우 그런 곳에 관광객을 태운 대형버스가 가서 주차할 공간이 이미 오래 전부터 모자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다시피 서울 시내 곳곳에 관광버스들이 도로 한 차선을 점거하고 서 있다. 여름ㆍ겨울에는 에어컨이나 난방기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심지어 얼마 동안 시동까지 걸고 있다.

한국에 돈을 쓰러 온 관광객에게는 이런 모습이 예사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을 맞는 사람 처지에서 보자면 이건 참기 힘든 부당한 수고다. 당연히 자동차가 다니라고 그어 놓은 도로의 한 차선을 점거한 관광버스에서 내가 느끼는 불쾌함은 출퇴근길이 조금 막힌다는 것보다 왜 이런 부당한 주차를 용납해야는가 하는 것이다. “아, 한국은 버젓이 차선 그어 놓은 도로에 이렇게 버스를 세워도 되는 나라구나” 하고 느끼고 갈 관광객들이 몇은 있을 생각을 하면 더 낭패감이 든다.

시행을 몇 달 앞둔 ‘김영란법’을 두고 여전히 설왕설래가 오간다. 진즉 나왔던 이야기지만 경제가 안 좋다 보니 더욱 강조되는 게 이 법을 시행하면 닥칠 경기 침체 효과다. 예를 들어 전경련 산하 연구원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산업계의 연간 매출 손실액이 음식업 8조 4,900억원, 골프 1조 1,000억원, 유통 1조 9,700억원 등 총 11조 5,600억원이라는 자료를 내놨다.

음식업은 현재 3만원인 식사 한도를 5만원으로 올리면 4조 6,800억원, 7만원이면 1조 4,700억원, 10만원이면 6,600억원으로 손실이 줄어든다는 분석까지 덧붙였다. 현재 5만원인 선물 한도를 10만원으로 올리면 9,700억원으로 피해가 3분의 1로 줄어든다고도 했다. 선물로 쓰일 한우, 굴비 등 농수축산물 생산 농가의 피해가 걱정된다며 법 개정을 주장하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 주장대로 유통이 위축되는 효과를 예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비유해 내게 이런 주장은 마약을 단속하면 마약 제조업자나 마약 유통상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판매가 위축된다는 이유로 충분히 ‘뇌물’을 의심할만한 이런 농수축산물의 선물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심지어 농가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 아닌가.

한때 청와대 홍보수석이었고 지금 국회의원이며 여당 대표 출마설까지 돌고 있는 인물이 세월호 사건 당시 공영방송 보도국장에게 전화로 보도 수정을 요청한 녹취록이 공개돼 화제다. 당사자의 “죄송하다”는 말만 들으면 잘못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지만, 그 사과의 수준이나 그 뒤 나오는 이런저런 변명 같은 말을 듣다 보면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살다 보면 익숙해지는 일들이 많다. 도로 한 차선을 점거하는 관광버스도, 때가 되면 받는 선물도 그렇다. 기자의 경우, 취재를 위해 ‘기관’의 사람과 살갑게 통화하고 보도 내용을 두고 ‘기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도 더러 있다. 문제는, 이런 관행 속에서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품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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