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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

입력
2015.10.2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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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생긴 아시아여성기금은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93년 고노담화에 대한 후속대책의 성격이 짙었다. 담화에서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으나 당시 미야자와 정부는 물론 호소카와, 하타 정부를 지나도록 누구도 어떻게 사과할 것인지 의지를 보이지 않자 민간기금 형식을 빌어서라도 할머니들에게 사과하자는 취지였다. 무라야마 연립정부에서 발족을 주도했고, 피해자 의료비와 사무국 경비 등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는 등 공적인 면이 없지 않았으나 법적으로는 민간재단의 선을 넘지 못했다.

▦ 기금은 피해자 한 사람 당 일본 국민의 기부로 모금된 200만엔과 의료비 지원 등 명목으로 정부 예산이 포함된 300만엔 등 모두 500만엔을 지급하고 총리의 사과 편지를 피해자에게 전달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상금과 총리 편지는 97년 1월 플라자호텔에서 7명의 할머니에게 비공개로 전달됐고, 후에 60여명이 추가로 받았다. 일본 정부 책임 인정에 대한 이견으로 2002년 별 성과 없이 끝났지만 일본은 속죄하려는 일본 국민의 자발적 마음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지금도 이 기금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2012년 초 한일이 진지하게 협상했던 ‘사사에안(案)’은 보상금을 민관 기금으로 지원하고 총리가 사과 편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아시아여성기금과 흡사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위안부 문제에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고 한 것도 아시아여성기금을 토대로 한 새로운 협상을 염두에 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본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법적 책임을 정치의 영역으로 남겨 두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들이 일본의 사과를 받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 어렵사리 다음달 2일 성사된 한일 정상회담 개최 과정에서 양국이 볼썽사나운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확정되지도 않은 정상회담 날짜를 미리 공개한 우리의 비외교적 처사나 이를 유치하게 맞받아치는 일본도 속 좁기는 마찬가지다.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전달된 사과 편지에서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사과와 반성을 표한다”며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이를 올바르게 후세에 전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에게서는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제라도 할머니들이 명예롭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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