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에 소란이 일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최문선 김민선 부부)의 작품 ‘아트솔라리스(artsolaris.org)’ 때문이다.
지난 1월 인터넷 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트솔라리스는 국내 미술작가의 인적 사항과 주요 전시 정보들을 활용해 미술계에 형성된 네트워크와 개별 구성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3차원 지도다. 미술계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미술계의 카르텔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업이다.
미술계 폐쇄성 고스란히 드러나다
마흔 넷 동갑내기 최문선 김민선 부부는 1년여 준비를 거쳐 지난 1월 말 아트솔라리스를 공개했다. 제작에는 데이터마이닝 기법(대용량 데이터에서 유용한 상관 관계를 추출하는 과정을 의미)이 이용됐다. 뮌은 기획자, 작가, 평론가 등 미술계 인사의 전시 정보(23일 기준 830여명)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구성했다. 여기서 전시는 공적 자금이 투입된 전시로 제한했다. 공적 자금이란 정부 지원금뿐만 아니라 예술 지원으로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 기업 후원금을 포함한다. 최씨 부부는 2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사적 영역의 미술이 아닌 공공성에만 주목하고자 했다”며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전시의 경우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져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데이터가 입력되면 전시의 중요도와 전시 내 역할에 비례해 점(인물)의 크기가 결정된다. 전시를 두 번 이상 함께 하면 점들이 선(관계)으로 연결된다. 전시 횟수가 많아질수록 선은 굵어지고 짧아진다(끌어 당긴다). 알고리즘에 의해 완성된 지도에는 아주 긴밀하게 얽혀 있는 중심부 하나가 나타났다. 김민선씨는 이 중심부를 “미술계가 얼마나 폐쇄적인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하며 “아주 강력하게 엮인 ‘단 하나’의 그룹에 의해 미술계가 돌아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 중심부에는 김선정(큐레이터), 김홍희(큐레이터), 박찬경(작가), 임민욱(작가) 등 10명 안팎의 인물이 긴밀하게 엮여 있다. 임민욱은 김선정, 박찬경과 각각 11회의 전시회를 했다. 작가들은 이 강력한 중심부를 ‘무대’ 혹은 ‘카르텔’이라고 말했다. 또한 중심에 속한 인물들이 서로를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현상을 ‘감염적 소비’로 정의했다.
최씨 부부는 미술계 카르텔이 국내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여러 개의 카르텔이 서로 경쟁하고 교류한다며 미술계를 하나의 그룹이 주도할 경우 취향이 매몰돼 획일화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중의 관심에서 비켜 선 예술일수록 주류의 전횡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거기서 유추해 대중이 어렵다고 여기는 무용ㆍ음악 등 소위 ‘고급 예술’의 경우 다양한 취향에 견제 받지 않아 하나의 취향만 살아남을 것으로 봤다.
단일한 취향의 전파와 문화 획일화
최씨 부부는 카르텔보다 더 큰 문제는 ‘독립군’까지 주류의 문화에 편입되는 (혹은 편입되기 위해 노력하는)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모든 구성원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마치 유일한 성공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며 “미술계 인물들은 이미 형성된 카르텔에 어떻게든 편입되고자 그들의 취향에 작업을 맞춰간다”고 분석했다. 또 “젊은 시절에는 우리도 역시 그 무대만 바라보고 아등바등했다”며 이런 행태가 유지될 경우 미술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취향을 맞춘다고 모든 점들이 주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심부와 연결될 수 있는 점은 ‘운이 아주 좋은’ 극히 일부의 경우다. 마치 ‘노력해도 안 된다’는 유행어처럼 애를 써도 이미 공고해진 카르텔 구조에 편입되기란 쉽지 않다. 김민선씨는 “그런데도 모두가 신기루 같은 하나의 무대만 보고 달려간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중심과 독립 사이 한 점을 가리키며 “시간 순서대로 전시회를 보면 중심부와 한 번 손잡은 후에는 그들과만 계속 작업을 하려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며 “그냥 블랙홀처럼 안에 빨려 들어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독립군끼리 뭉쳐볼 수는 없을까. 최씨 부부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류에 편입되지 않으면 실력 없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미술계에 팽배한데다 한국 미술계는 워낙 좁다 보니 권위에 함부로 도전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트솔라리스의 분석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특히 갤러리 전시를 제외해 자료가 미술계 전반을 보여준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리는 연구원이나 통계학자가 아닌 작가”라며 “미술의 공공성을 말하기 위해 작가로서 작품을 구현한 것이라 봐달라”고 말했다. “억지로 카르텔을 보여주고자 의도한 것도, 한국 미술의 기반 다진 주류들의 공로를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며 “그저 객관적으로 우리 현실을 보자는 것”이라고 의도를 밝혔다.
“공론화의 단초를 제공한 데 만족”하지만 앞으로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갈 생각이다. 홈페이지나 메일을 통해 추가 데이터나 자료를 받고 있다. 작품 공개 후 받은 수많은 정보들을 입력해 한 달 내 분석 인원 1,000명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아티스트 등의 정보를 다양하게 수집해 아트솔라리스 2.0를 만들 계획도 있다.
아트솔라리스 공개 이후 쏟아진 비난
아트솔라리스 공개 이후 미술계에서는 뜨거운 피드백이 쏟아졌다. 비난은 주로 주변부에서 나왔다. “주류를 질투한다거나 주류끼리 밥그릇 싸움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근거나 이유도 없이 “구리다”는 평론가도 있었고 “크지도 않은 미술계를 굳이 시각화해 뭐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최문선씨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비판은 환영”이라면서도 비난의 화살이 미술계의 카르텔이라는 본질을 말하지 않는 것에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손가락으로 잘못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욕하는 것”이라며 최씨는 “우리 모두가 잘못된 구조 속에 이미 살고 있었는데, 그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니까 시각화한 놈을 찾아서 응징하려는 발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중심부와 멀리 떨어진 수많은 독립군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작품 공개 후 부부는 20년 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는데도 점으로도 표현되지 않은 한 작가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이제 미술계를 떠나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얘기였다. 작업의 부작용이었다. 작가들은 “결코 좌절감을 줄 의도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저변을 확장하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진석(큐레이터), 함영준(큐레이터) 등은 이미 미약하게나마 별도의 무대를 만들어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미술계 카르텔 중심부의 반응은 어떨까. 침묵이다. 최씨 부부는 “이번에 제기된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는 것 자체가 어쩌면 미술계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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