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미환
선임기자

등록 : 2017.05.19 20:30

좋은 삶을 바란다면 자신에게 딴짓을 허하라

[다른 생활 탐구] 14.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등록 : 2017.05.19 20:30

불만스러운 오늘과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내일 앞에서 시무룩한 당신에게 이 방송은 요긴한 처방이 될지 모른다.

좋아질 수 있다, 달라질 수 있다며 방법을 일러준다. 그 방법을 ‘기술’이라 부른다. 인생을 확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일상을 잘 꾸려가면 좋은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누구나 일상에서 실험해볼 만한 ‘작고 만만한’ 기술을 연구하는 팟캐스트 ‘ 일상기술연구소 ’가 이달로 딱 1년이 됐다.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를 만드는 사람들이 서울혁신파크 내 녹음실에 모였다. 왼쪽부터 제현주, 이유미, 조아라, 금정연씨. 류효진기자

일상기술연구소는 전자책출판협동조합 롤링다이스가 기획하고 조합원 제현주씨, 프리랜서 서평가 금정연씨가 진행하는 방송이다. 녹음과 편집에 이유미씨, 고정게스트 조아라씨가 함께한다. 출발점은 제현주씨의 개인적 고민이었다. 경영 컨설팅업체, 투자은행 등에서 투자 전문가로 10여년 간 일하고 나와 협동조합 꾸려서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며 나름대로 잘 지냈는데, “이렇게 계속 살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인생 잘 살았다고 생각하게 될까?”라는 질문에 부닥쳤다고 한다. 고민을 풀기 위해 시작한 것이 일상기술연구소다.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을 단단하게 꾸려가는 ‘기술자’를 초대해 노하우를 듣고 대화를 나눠 왔다. 주어진 대로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고 내 삶의 주인으로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격주 목요일마다 내보낸 방송이 18일 방송분까지 51편이 쌓였다.

출연한 기술자 가운데 10명의 이야기를 묶은 책 ‘일상기술연구소’(제현주ㆍ금정연 지음, 어크로스 발행)가 때맞춰 나왔다. 돈 관리의 기술부터 생활체력의 기술까지 일상생활의 기술과, 직장 밖에서 내 몫의 경제생활을 꾸려가는 독립생활의 기술을 담았다. 내 욕망을 존중하는 적정 소비습관을 다룬 돈 관리의 기술, ‘따로 또 같이’ 사는 공동주거의 기술, 몸의 감각과 몰입의 즐거움을 깨우는 손노동의 기술, 계속 불어나는 물건과 정보를 정리하는 기술, 스트레스 없이 일 벌이는 기술, 배우는 재미와 가르치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 평생공부의 기술, 나만의 작은 가게 꾸리기, 프리랜서로 먹고 살기 등등.

이 방송의 오프닝 멘트는 늘 똑같다. “내일은 막막하고 마음은 불안한 시대, 좋은 일상을 만드는 구체적인 기술을 연구합니다.”

“ ‘인생’을 잘 사는 건 자신도 없고 너무 먼 얘기처럼 느껴지던 그 시기, 그냥 하루하루의 ‘일상’에 충실하고 좀 더 행복하게 채우고 싶다고, 딱 그만큼에 필요한 이야기를 팟캐스트에 담아보고 싶다고 제가 운을 떼었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하는 또 다른 멤버의 바람이 보태졌습니다. 의지와 노력으로 막연히 뚫고 나가자는 뻔한 말 대신, 실제로 실험해볼 수 있는 작은 노하우들을 담겠다는 목표를 함께 잡았습니다.”(책 프롤로그에서)

금정연씨는 “일상기술연구소를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며 “매번 놀라고 감탄하고 반성하게 되더라”고 말한다.

“방송하면서 제가 제일 많이 한 말이 ‘난 안 되겠어요’, ‘깜짝 놀랐어요’, (기술 없음을) ‘반성합니다’에요. (초대한 기술자들에게) 두렵지 않냐, 힘들지 않냐고 계속 질문하게 되더군요. 청취자들도 그런 걱정을 제일 많이 하지 않을까요?”

‘나도 할 수 있겠다. 한 번 해볼까’ 싶은 만만한 기술을 연구하려고 기술자를 모셨는데 두려움과 걱정을 묻게 된 것은 출연자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에너지가 남달리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인 경로를 벗어나, 어디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출연했다. 대부분 프리랜서이고 직장인은 거의 없었다. ‘본격 퇴사 권유 방송’이라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들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먹고 사는 문제로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 청취자가 남긴 소감은 작은 용기를 준다.

“출연한 게스트들 모두 기존 삶을 그냥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난 어떻게 살고 싶지?’ 질문해보고 ‘난 이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랬더니 충분하지는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충분하지는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판단은 결국 삶의 태도이겠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몸에 익는 게 아니므로 훈련이 필요할 터. 기술자들이 몸소 체득한 노하우를 참고할 만하다. 출간 시기가 맞지 않아 책에는 들어가지 못한 내용 중 ‘일상창작의 기술’ 편(4월 6일 방송)에 출연한 어슬렁(이미영 씨)은 ‘뭐든 작게라도 직접 해 보면 달라진다’며 ‘궁금하면 일단 해보라’고 권했다.

궁금하면 일단 해보라는 일상창작 기술자 어슬렁의 조언에 따라 제현주씨가 무작정 해본 아무거나 드로잉 한 점. 제현주씨 페이스북

‘어슬렁 어슬렁 여행 드로잉’의 저자로 “여행 가서 그림도 그리고 자가출판도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궁금한 건 뭐든 해 보다가 별 걸 다 만들게 된 사람이다. 그림 그리기, 작곡, 밴드 활동, 연극 출연, 애니메이션, 프로그래밍, 목공, 뜨개질에 베틀 만들어서 천을 짜는 것까지 오지랖 넓게 두루 하고 있다. 전공한 건 하나도 없고 전부 궁금해서 배운 것들이다. 지금은 인터넷만 뒤져도 거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시대다.

문제는 지속하는 힘이다. ‘어떤 에너지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가 들려준 노하우는 무심한 듯 정곡을 찌른다. ‘그냥 시작하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야금야금 조금씩 꾸준히 하라. 무엇보다 나는(인간은 누구나) 본래 창작자임을 굳게 믿으라.’ 누구나 예술가이고 모두가 창작자라는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드로잉으로 책까지 낸 어슬렁이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확신이다.

그렇게 살면서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일단 소비를 줄여라. 소비할 필요가 없는 것은 끝까지 줄여보고 대체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찾아보라. 사서 쓰지 않고 직접 만들어 쓰자면 시간이 좀 더 들고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겠다는 약간의 의지가 더 필요하다. 돈을 좀 덜 벌더라도 내가 내 삶을 꾸려가는 데 내 시간을 더 쓰겠다 생각하면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어슬렁의 이야기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이것저것 직접 만들다 보니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고백이다. 필요한 모든 것을 소비로만 해결하는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살아갈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과정을 들려줬다. 그는 “뭔가 잘못됐다 느끼는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 필요가 있는가. 다른 방식의 삶이 있다면 그 방식을 따라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팟캐스트 방송 1주년에 맞춰 나온 책.

일상기술연구소가 소개하는 기술은 당장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알려준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손으로 만드는 기술’ 편의 기술자 아랑은 ‘자신에게 쓸데없는 일을 허락하라’고 조언했다.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는 딴짓은 팍팍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새는 다른 삶으로 이끄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폐목재로 업사이클링 가구를 만드는 ‘문화로놀이짱’ 대표인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 역시 우연찮게 시작한 딴짓이었다. 대단한 깨달음이나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만 인생을 전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은 아랑을 비롯한 출연 기술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제현주, 이유미씨는 어슬렁의 일상 창작 기술 방송 후 바로 ‘아무거나 드로잉’을 시작했다. 제씨는 8일 만에 그만뒀지만 이씨는 온라인 드로잉 강좌까지 등록해 계속 그리고 있다. 제씨는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상기술자들을 보면서 좋은 자극을 받는다’며 ‘일상의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된다’고 말한다. 금정연씨는 ‘흐물흐물 시간을 흘려 보내던’ 생활에 리듬이 생겼다고 말한다. 책 읽고 글만 쓰던 그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산 것은 손으로 만드는 기술 편을 방송하고 나서다. 만들기는 아니지만 손을 쓰는 딴짓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딴짓을 하면서 일상에 조금씩 틈새를 벌리다 보면 삶을 재구성하게 될지 모른다. 인생 리셋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사는 기술이 늘어날 테니까. 일상기술연구소가 소개한 기술자들이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용기를 내보자. 해 보지도 않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한탄하기는 억울하지 않은가.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