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음악상 ‘빌보드 뮤직 어워즈’서
관객들 후렴구 따라부르며 열광
싸이 ‘강남스타일’보다 팬덤 두터워
美 10대 즐기는 음악으로 자리잡아
새 앨범 나온 서울 음반 매장에서
첫 구매자도 한국인 아닌 미국인
“페이크 러브!”. 2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미국 3대 음악상으로 꼽히는 ‘2018 빌보드 뮤직 어워즈(BMA)’에서 새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를 부르자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18일 신곡이 공개된 뒤 이틀밖에 되지 않아 벌어진 ‘떼창’이었다. 외국 팬들은 낯선 한국어로 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한국 팬처럼 빠른 속도로 즐기고 있었다. 이날 사회자로 나선 미국 가수 켈리 클락슨은 방탄소년단에 대한 팬들의 환호를 익히 알고 있다는 듯 귀마개를 쓴 뒤 팀을 소개하기도 했다.
“K팝 가수 미국 컴백 무대 비현실적”
방탄소년단은 신곡을 BMA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그것도 현지 지상파 방송사(NBC)를 통해 생중계되는 대형 음악 축제에서 한국 가수가 복귀 무대를 꾸리기는 방탄소년단이 처음이다. 국내 케이블방송 Mnet에서 시상식 해설을 한 가수 겸 작곡가 윤상은 “30년 넘게 팝 음악을 듣고 자랐던 사람으로 K팝 아티스트가 BMA서 컴백 무대를 한다는 게 비현실적”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K팝 영역을 뛰어넘다
BMA에서의 복귀 신고식은 팝의 본고장에서 달라진 방탄소년단의 위상을 보여준다. 방탄소년단은 BMA 출연에 앞서 유명 토크쇼인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와 CBS ‘제임스 코든쇼’ 녹화도 마쳤다. 미국 주류 연예 무대가 방탄소년단의 신곡 소개에 경쟁적으로 나선 데는 방탄소년단의 현지 팬덤이 그만큼 두텁다는 걸 보여준다. 싸이는 2012년 ‘말춤’으로 북미 대륙을 달궜지만 ‘강남스타일’ 이후 현지에서 열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방탄소년단이 싸이와 다른 점이다.
방탄소년단은 미국에서 영향력을 점점 키우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페이크 러브’는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재생) 음원 사이트인 스포티파이에서 이날 14위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 차트 톱20에 한국 가수가 오르기는 처음이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9월 낸 앨범 ‘러브 유어셀프 승 허’ 타이틀곡 ‘DNA’로 같은 차트 41위에 올랐다. 이전보다 27계단 순위가 올랐다. 7,900만여명이 가입한 스포티파이는 북미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악 유통 채널이다.
방탄소년단이 BMA에서 복귀 무대를 열고 현지 음원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방탄소년단이 K팝 마니아 시장을 벗어나 현지에서 주류 음악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음악평론가인 김작가는 “미국에서의 컴백 무대 등을 볼 때 방탄소년단은 이미 K팝의 지역적 특수성이란 한계를 뛰어 넘었다”고 봤다. 음악평론가인 김상화씨도 “미국에서 방탄소년단을 K팝,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닌 (유명 팝스타) 저스틴 비버처럼 현지 주류 10대들이 즐기는 세계적인 대중 음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에 거점을 둔 유명 음원사이트 애플뮤직은 아티스트 소개란에 방탄소년단을 ‘A K-pop boundary breaker’(k팝 영역을 뛰어넘은 자)라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이 K팝의 경계를 허물며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클락슨도 BMA에서 방탄소년단을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보이밴드”라고 소개했다. ‘한국 가수’ 혹은 ‘K팝 그룹’이라는 언급은 없었다. 국경을 뛰어넘은 네티즌의 높은 관심을 바탕으로 방탄소년단은 이 시상식에서 비버를 제치고 또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수상이다.
“방탄소년단 알게 돼 한국 여행”
방탄소년단은 국내 음반 구매 풍경까지 다국적으로 바꾸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음반 매장 교보핫트랙스에서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을 처음으로 산 이는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었다. 방탄소년단 CD가 처음 풀린 19일 오전 9시30분 매장에서 가장 먼저 앨범을 손에 쥔 노서린 가스트럴씨는 “방탄소년단을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돼 여행까지 오게 됐다”며 “여행 온 김에 방탄소년단 CD를 사고 싶어 매장에 왔다”고 말했다. 애리조나주에서 왔다는 가스트럴은 뉴욕 등에서 온 친구 두 명과 CD를 사기 위해 매장 영업 시작 한 시간 전인 오전 8시30분부터 줄을 서 기다렸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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