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선언 후 첫 언론행사서 사과
전문 직접 손 보고 '참담' 표현까지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해 제 자신이 참담한 심정이다. 책임을 통감하며머리 숙여 사죄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사 사옥 다목적홀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대해 직접 나서 사과했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사과다. 이날 사과는 삼성서울병원 운영을 맡고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이뤄졌다.
14일 삼성서울병원의 대국민 사과, 17일 삼성 사장단의 대국민 사과, 그룹 홍보실을 통한 사과에 이어 네 번째다. 수 차례 사과한 만큼 수위가 한껏 높아져 이 부회장은 발표 도중 두 번이나 단상 밖으로 나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 부회장은 메르스와 전쟁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해달라는 대목에서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며 잠시 목이 메이기도 했다. 더불어 그는 지난해 5월부터 1년째 투병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떠올리며 “아버님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신다”며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고 메르스 환자 가족들을 향해 위로의 말을 전했다.
사과가 전부는 아니었다. 이날 이 부회장은 병원의 대대적 혁신과 재발방지 노력, 진료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감염질환의 예방과 백신, 치료제 개발에 대한 지원까지 언급했다. 보충설명에 나선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이번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병원쇄신위원회 구성, 위기관리시스템 점검 및 개편, 응급실 개선, 감염질환 연구지원 등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선언한 이후 공식적인 첫 언론 행사를 사과로 시작한 것은 그만큼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사과의 진정성을 전달하고 싶다”는 이 부회장의 ‘적극적 의지’도 한 몫 했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그룹 총수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강했다”며 “사과문 초고를 작성할 때 무한대의 사과 표현을 쓰고 싶어했고 최종적으로 사과문 전문을 이 부회장이 직접 손봤다”고 전했다.
‘사죄’, ‘참담’, ‘송구’ 같은 강력한 표현이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사과 시점은 지난 주말 메르스가 진정세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이번 주초로 잡혔다.
후속대책이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거창한 후속대책을 내놓고 나중에 흐지부지되는 것보다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라며 “단계별로 차근차근 구체적 행동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교롭게 사과문을 발표한 이날은 이 부회장의 만 47세 생일이다. 1991년 12월 삼성전자 에 사원으로 입사한 이래 공식 기자회견에 처음 나선 자리이기도 하다. 삼성 관계자는 “어쨌든 이 부회장이 국민 앞에서 책임지겠다는 모습을 보여준 만큼 지금까지 논란이 책임론에서 벗어나 향후 대책 마련 등 조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