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2030 세상보기] 이런 나라에 살고 싶으세요?

입력
2015.01.21 20:00
0 0

한 직장인이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를 이용해 연말정산작업을 하고 있다.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한 직장인이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를 이용해 연말정산작업을 하고 있다.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요즘 갑(甲)질이 유행이다. 아마도 시작은 대리점주들에게 밀어내기와 폭언을 자행했던 남양유업이었다. 수위 아저씨를 자살로 몰고 간 압구정 모 아파트의 주민 할머니를 거쳐, 정점은 ‘땅콩리턴’ 조현아가 찍었다. 곧이어 아르바이트 학생을 무릎 꿇린 백화점 모녀가 후속타를 쳤고, 오늘도 수많은 을(乙)들의 사연이 방방곡곡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어느 회사에나 ‘조현아’가 있고, 식당에는 남양유업 회장‘님’들이 수두룩하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힘(돈이나 지위 등)으로 눌러 굴욕감과 치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갑질의 핵심이라면 이미 한국은 모욕감과 스트레스로 내면이 만신창이가 된 을들로 가득한 사회이다. 이런 나라에 살고 싶으세요?

딸같이 귀엽고 손녀처럼 정답다고 부하 직원이나 제자의 신체를 만지고도 (거의)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성범죄자들에게 천국 같은 나라, 남의 집 꽃같이 가녀린 어린아이를 마구자비로 구타하는 보육원의 나라, 침몰하는 배를 화면으로 보면서도 단 한 명의 생명도 구조해내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의 나라, 무차별적인 집단 폭행으로 동료를 죽인 가해자들을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처벌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군대를 가진, 이런 나라에 살고 싶으세요?

‘13월의 보너스’로 불리던 연말정산은 이제 ‘13월의 세금폭탄’이 됐다. 담배세와 주민세 인상에 이어 세금폭탄으로 중산층 직장인들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뒤늦게 정부는 후속 대책을 발표했지만 즉각적인 실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최소 100만명의 부양가족 없는 1인 공제자는 사실상 ‘싱글세’를 물게 됐다. “연봉 5,500만원 소득자는 세금이 한 푼도 안 늘어나고, 7,000만원 이하자는 연 2만~3만원 증가할 것”이라던 정부 발표는 틀렸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다면 무능하고, 알고도 그리했다면 악랄하다. 어떤 경우든 정부는 국민들에게 책임지지 못할 말을 했다. 이로써 손대기 쉬운 서민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들이겠다는 정부의 꼼수는 드러나 버렸다. 이명박정부 5년간 상위 10대 재벌 기업이 법인세 10조6,013억원을 공제, 감면받았던 것과 비교된다. 재벌은 점점 세금을 적게 내고, 거기 다니는 직장인들은 점점 세금을 더 많이 내는 형세다. 재벌과 부자는 점점 살찌고 국민들은 가난해지고 있다. 국민들이 정부의 ‘호갱’으로 계속 주머니를 털리는, 이런 나라에 살고 싶으세요?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법은 너그럽고 친절하나, 평범한 국민들에겐 차갑고 가차없다. 관용은 그들에게만 편향돼 베풀어진다. 재벌 회장이 불법행위로 수감되면 정치권에서는 경제위기 운운하며 가석방을 들먹인다. 전과자 회장이 없어서 위기가 생길 정도로 허약한 기업이면 망해도 된다. 이런 사건들이 터지면 미꾸라지 한 두 마리가 물을 흐려서라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저런 일들은 항상 일어나고 근본 대책 운운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관련자 대부분은 가벼운 처벌로 끝이 난다는 것을. 처음엔 남양유업 제품을 보이콧했지만, 금세 갑질은 추억으로 잊혀졌다. 대한항공도 그렇게 될 것이다.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면 이런 일은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반복돼 결국 내게도 생기기 마련이다. 돈 없고 ‘빽’없으면 법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런 나라에 살고 싶으세요?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이념으로 민본(民本)을 내세웠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은 말로써 아름답고 뜻으로 깊다. 14세기 말에 이런 위대한 정신에 입각해 나라를 세웠던 조상을 가진 우리나라의 지금은 어떤가? 희망이 없을 때 인간은 짐승이 되듯이, 희망 없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된다. 대한민국의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돈 없고 지위가 낮다고 무시당하지 않는 나라,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나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다. 이런 나라를 만들려는 세력은 현실에서 힘이 없고, 그럴 힘을 가진 세력은 그런 나라를 만들 생각이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낼 정치세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