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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하 기자

등록 : 2017.07.06 15:08
수정 : 2017.07.06 15:36

김정숙 여사 식수... 윤이상 재조명 바람

세계적 음악가 불구 '동백림 사건'으로 이념 낙인... 100주년 기념 행사 잇달아

등록 : 2017.07.06 15:08
수정 : 2017.07.06 15:36

작곡가 윤이상이 독일 베를린의 자택에 머물던 시절에 찍은 사진. 윤이상평화재단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시간) 오후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묘소를 찾으면서 고인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한국 역대 대통령 부인이 윤이상 묘소를 찾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 여사는 경남 통영시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전용기로 옮겨와 윤이상 묘소에 심었다. 윤이상의 살아생전 향수를 늦게나마 달랜다는 의미를 담았다.

윤이상은 동서양의 세계관을 넘나드는 작품을 만든 세계적 작곡가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그의 이름과 작품이 일반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이념 논쟁에 시달려 온 탓이다. 윤이상의 음악은 그가 베를린에서 숨지기 겨우 1년 전에야 윤이상음악제 등을 통해 한국 땅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윤이상은 ‘상처 입은 용’으로 일컬어진다.

1917년 통영에서 태어난 윤이상은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 입학한 후 일본에서 작곡과 첼로 등을 공부했다. 항일운동을 위한 지하조직에 가담했다가 두 달 간 투옥되기도 했다. 독립투쟁에 적극적이었던 윤이상은 일제의 눈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도 첼로를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다. 해방 후에는 생계 걱정 없이 음악을 하기 위해 통영과 부산, 서울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며 틈틈이 작곡을 했다. 1956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독일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작곡 공부를 이어갔다.

윤이상이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과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은 졸업과 동시에 네덜란드 빌토벤, 독일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초연 돼 호평을 받았다. 1966년 독일의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에서 발표한 대편성 관현악곡 ‘예악’으로 인정받으며 윤이상은 국제적인 작곡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서양악기로 국악기를 모사한 ‘예악’은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이 전통적이면서도 첨단적으로 결합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가 2015년 말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20세기 한국예술의 고전이 될 음악작품 1위로 꼽히기도 했다.

‘동양의 사상과 음악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켜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표현이 윤이상을 뒤따른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김정숙 여사도 윤이상의 묘소에서 “저도 음악을 전공해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며 “음 파괴가 낯설긴 하지만 작곡했던 선배들은 물론이고 저도 관심이 많았다. 학창 시절 음악 공부할 때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지난 3월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폐막식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한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는 “윤이상은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한국에서도 그의 음악을 많이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윤이상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세계 수준에 못 미친다. 윤이상은 1963년 동베를린 북한 대사관으로부터 죽마고우였던 친구를 평양에서 만나게 해주겠다는 초청에 응했다가 4년 뒤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해외 음악계에서는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요청이 들끓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등 저명한 음악가 181명이 윤이상을 석방하라는 서한에 이름을 올렸다. 윤이상은 수감 2년 만인 196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됐고 이후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윤이상은 이 사건 이후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그의 복권이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시각도 많다. 윤이상평화재단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이 올랐고,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윤이상을 기리는 행사는 정작 국내에서 예산이 삭감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경남도가 예산을 전액 삭감했으나 지난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7년도 문예진흥기금’에 선정돼 겨우 열릴 수 있게 됐다.

윤이상이 재조명 되면서 그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 이어질지 주목된다. 음악계에서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그를 기리는 연주회가 풍성하게 예정돼 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이달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죽음에 관한 두 개의 교향시’라는 주제로 윤이상의 ‘화염 속의 천사’ 등을 연주한다. ‘화염 속의 천사’는 독재 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분신자살을 한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윤이상이 1995년 발표한 교향시다. 국내에선 서울시향(1999년), 부산시립교향악단(2001년)에 이어 세 번째 연주다.

서울시향은 다음 달 15일 광복절 기념음악회에서 윤이상의 ‘예악’을 연주한다. 특히 윤이상 탄생일(9월 17일) 즈음에는 국내외 연주가 잇따른다. 첼리스트 고봉인은 오는 9월 14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윤이상 특별 무대를 갖는다. 탄생일에는 윤이상과 절친했던 지휘자 하인츠 홀리거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실내악 무대를 꾸민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같은 날 독일에서 열리는 ‘무지크페스트 베를린’에 참가해 성시연 지휘로 ‘예악’과 ‘무악’ 등을 연주한다. 같은 달 22일에는 홀리거 지휘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를 열고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자로 나선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클라라 주미 강은 이후 25일부터 1주일 간 유럽을 돌며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하모니아’ 등을 선보인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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