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애써 일해 봤자 뒤집어질 것…" 당청 갈등에 손 놓은 공무원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애써 일해 봤자 뒤집어질 것…" 당청 갈등에 손 놓은 공무원들

입력
2015.02.06 04:40
0 0

"몇 년 공들인 정책이 하루 새 물거품… 거짓말·설계 실패 등 정부 탓만 해"

친박 실세 최경환 부총리 막강 파워… 잇단 정책 실기로 입지 위축 우려도

유승민(왼쪽)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유승민(왼쪽)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불안, 푸념, 무기력, 실망, 배신감, 자조, 그리고 좌절까지.

요즘 공무원사회를 짓누르는 감정들이다. 주요 정책들은 뒤바뀌거나 제동이 걸리기 일쑤고, 그에 따른 비난까지 모두 떠안아야 한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리라 기대했던 부처 수장들은 여론과 정치권에 떠밀려 정책의 원칙마저 훼손하고 있다. 모든 책임은 실무진의 잘못으로 전가된다. 그나마 유지되던 당정 관계는 여당 지도부 개편으로 더 큰 불협화음을 예고하면서 공무원들은 아예 일손을 놓을 분위기다.

연말정산 파동과 연이은 소급 적용 사태, 건강보험료 개편 백지화는 관련 공무원들의 사기를 꺾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2년 전 확정된 세액공제 원칙과 18개월 준비한 건강보험료 개편방안이 일거에 무너지면서 후속대책을 만드느라 해당 공무원들은 초주검이 됐다.

기재부의 A 과장은 “몇 년 공을 들여 당정협의와 여야 합의로 만든 정책이 하루아침에 거부당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료 체계는 워낙 큰 사안이라 자료 작성부터 전화 응대, 국회 요구자료 등 처리할 문제가 산더미”라고 말했다. “애써 만들면 뭐하나, 다 뒤집어질 텐데”라는 자조도 들린다.

공무원들은 정치권, 특히 여당이 정책을 정치의 재료로 삼는 상황에 심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경제부처의 B 과장은 “민심을 헤아리는 건 좋지만 ‘거짓말’(증세 없는 복지) ‘정책 설계 실패’(연말정산) 등 무조건 정부 잘못으로 몰아가면 정책 수행이 제대로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흔들리는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친박 실세’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잇따른 정책 실기와 대통령 지지율 급락에 이어,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의 등장으로 당정청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야당의 반대로 경제활성화 등 여러 정책이 여전히 보류 중인데, 여당까지 가세하면 향후 추진하는 4대 구조개혁 등 정책 일정들은 줄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조세정책과 관련해서 기재부 세제실은 허수아비가 된 지 오래다. 그렇잖아도 연말정산 파동으로 책임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증세 여부의 주도권은 이제 완전히 당 쪽에 빼앗긴 상황이다. 그 동안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증세는 없다”고 완강히 버티던 최 부총리가 “여야 합의가 이뤄지면 따르겠다”고 물러선 것이 그 방증이다. 더구나 모든 잘못을 공무원사회로 떠넘기는 분위기에 좌절하는 모습이다. 기재부 C 국장은 “군인, 사학연금 개혁 일정을 확정한 건 적극적으로 일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이미 자료까지 나온 내용을 실무진으로 잘못이라고 해명하면서 해당 공무원은 바보가 됐다”고 씁쓸해했다.

현 정부가 누누이 강조하던 부처간 협업도 제대로 작동될 리 없다. 안팎으로 일에 치이고 공격을 당하다 보니 서로 책임을 미루는 눈치다. 최 부총리의 힘을 바탕으로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기재부는 “타 부처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는 반면, 다른 부처 공무원들은 “욕은 우리가 먹고 성과는 기재부가 챙긴다”고 불평했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야당이 도전하고 국민들이 반발하면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당정협의의 목적인데, 지금처럼 오히려 여당이 정부를 흔들면 어떤 정책이나 개혁도 완수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