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성ㆍ투명성… 이점 분명
인도 모디정부, 복권까지 발행
디지털 결제 전환 의지 확고
스웨덴, 2030년엔 현금 ‘0’
비현금 사회, 소외층 대안은
“돈으로 도시 분열” 경고 속
케냐는 저가폰 보급률 기반
문자메시지로 송ㆍ수금 문제 해결
“잡지와 휴대폰, 카드단말기, 서로 연결하는 블루투스 기능까지…결국은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든다며 다들 포기하더군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판매되는 잡지 ‘Z!’의 한스 반 달프센 편집장은 최근 판매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2~3주마다 한편씩 발간되는 ‘Z!’은 노숙인 자립을 돕는 문화지로 암스테르담의 노숙인들이 노상에서 2유로(약2,500원)에 판매한다. 문제는 이 2유로다. 최근 현금을 가진 행인들이 줄어들면서 잡지 판매 자체가 어려워지자 사측은 새로운 카드ㆍ모바일 지불 시스템을 시도했지만 복잡한 절차로 인해 한 달도 못돼 철회했다. 반 달프센 편집장은 “길거리 상인들도 간편하게 사용할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진 기술 회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현금 실종’의 시대다.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뿐 아니라 각종 모바일 결제에 익숙해지면서 암스테르담부터 서울까지 세계 주요 도시마다 디지털 결제 서비스 구축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도했다. 하지만 현금이 ‘2등 결제수단’으로 밀려나면서 여전히 현금을 사용하는 저소득층과 노인 세대를 ‘2등 시민’으로 전락시킨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간편함과 투명성 등 디지털 결제가 가진 이점도 분명하나 이로부터 소외된 집단과 간극을 줄이지 못할 시 ‘돈’으로 도시가 분열되는 참극이 다가올 것이란 경고다.
현금 없는 시대 임박…빠르면 2030년
최근 현금 체제에서 빠른 후퇴로 가장 주목 받는 나라는 인도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는 지난해 11월 유통 중인 현금의 86%에 해당하는 고액권 500루피(약 8,600원)와 1,000루피 지폐를 사용 중단하고 신권으로 교체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이후 이어진 현금 부족 사태와 수요 위축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한 모디 총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자결제 활성화를 통한 투명성 증대 등 원 취지를 강조하며 개혁을 강행하고 있다. 인도 정부 산하 경제정책기구인 니티 아요그는 동시에 루페이, USSD 등 정부 발행카드로 50루피 이상을 전자결제시 총 34억루피(약 594억원)를 당첨금으로 나눠주는 ‘전자결제 복권제’ 시행을 발표, 디지털 결제로의 전환 의지를 확고히 했다.
실제 시장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서서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도 인터넷 매체 뉴스모바일 아시아의 사우랍 슈크라 편집장은 “최근 두달 간 뉴델리의 소규모 ‘구멍가게’ 주인들이 일제히 카드 결제기를 들여놓고 페이티엠(Paytmㆍ 인도 최대 모바일 결제업체)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에 “도시들은 ‘디지털 쇼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소비자는 편리함을, 정부는 세금 투명성을, 소매상은 현금 유통 비용을 줄이는 혜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가마다 디지털 결제를 향한 변화 속도는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적으로는 유럽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미국 씨티그룹과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이 공동 연구, 발표한 2016년 ‘세계 디지털 화폐 지수’에서 상위 15개 나라 중 핀란드와 영국,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가 9곳을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2016년 기준 7위에 머무른 스웨덴은 향후 가장 먼저 완전한 디지털 결제로 전환을 이룰 국가로 지목됐다. 스톡홀름 KTH 왕립 공과대학 연구팀은 현재 스웨덴에 유통 중인 현금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덴마크 3%ㆍ영국 3.5%)인 점을 감안, 2030년이면 0%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외면 당하는 저소득층ㆍ고령 세대
문제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를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이다. 암스테르담의 노숙인 상인뿐 아니라 대도시 극빈층 모두가 현금에서 벗어날 수 없어 문제를 겪고 있다. 모바일 결제라 해도 대부분 은행 계좌 또는 은행 발급 카드와 연계된 상황에서 이들은 신용 문제로 은행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수수료 등 부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마스터카드사의 아제이 방가 최고경영자(CEO) 마저도 “은행 이용 인구와 비이용 집단 사이 격차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이를 간과할 경우 (극빈층끼리) 현금만 사용하는 커다란 섬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인들도 대표적인 ‘디지털 결제 취약층’이다. 스웨덴이지만 소도시가 밀집, 상대적으로 기술 변화에 둔감한 북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스톡홀름과 제2도시 예테보리에서 진행 중인 비현금 전환에 대해 반감이 극심하다. 스웨덴 주요 은행들이 이미 오프라인 지점을 폐쇄하고 전체 1,600개 은행 지점 중 900곳이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가운데, 노년층을 대변하는 국민연금수급자단체(NPO)는 노인들의 현금 이용 권리를 보장하라는 ‘현금 반란’(Cash uprising)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대안은 있다… 빈민 포용하는 아프리카
그렇다면 현금 이용자들을 기술 변화로부터 소외시키지 않고 원만히 비현금 사회에 편입시킬 방법은 없을까. 대안은 의외로 정보기술(IT)의 오지로 여겨졌던 아프리카에서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높은 저가 휴대폰 보급률을 기반으로 은행을 통하지 않은 모바일 결제 수단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현지 통신사 사파리콤이 2007년 개시한 엠페사(M-pesa)는 은행 계좌 없이 사용자 간 문자메시지를 전송해 송수금하는 방식으로, 케냐 성인의 70% 이상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러한 휴대폰 중심의 결제 플랫폼은 짐바브웨 등 빈부격차가 극심한 국가들에서도 보편화되며 소외 계층을 포용하고 있다. 짐바브웨의 기술 분석가 나이젤 감방가는 이에 “시민들의 적응력은 생각보다 뛰어나다”며 “최저소득층인 거리 상인들까지 ‘이 문제(디지털 결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내일은 없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완전한 ‘무(無)현금’과 ‘저(低)현금’ 사회 중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을 지속하고 있다. 영국계 컨설팅업체 컨설트 하이페리온의 데이비드 버치는 “가난이 혁신의 장애물이 되진 않을 것”이라며 “진통 때문에 일부 집단을 현금 경제에 묶어둔다면 그들이 부담하는 비용만 늘어날 뿐”이라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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