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지원정책 전달 쉽지 않아
청년수당 고졸 참여자 10%뿐
청년들에게 직접 해법 물어
수요자 중심으로 정책 설계해야
“고졸 워킹푸어는 우리 사회의 다중, 아니 만중(萬重) 격차의 단면입니다. 홀로 고립돼 있는 이 청년들에게 가장 먼저 사회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필요합니다.”
고졸 근로빈곤 청년들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묻기 위해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의 기현주 센터장을 28일 만났다. 청년들의 구직활동과 사회참여를 포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는 청년의 자존감 향상과 역량강화의 기회를 제공하고, 일경험과 기술 능력, 조직경험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다.
-왜 지금 고졸 워킹푸어인가.
”서울시 청년수당 시행 후 참여자를 살펴보니 고졸 청년이 10%밖에 안 됐다. 통계상으로는 20~30%여야 하는데, 어딘가에서 일을 하느라 참여를 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청년수당의 기본 취지가 미취업 상태의 니트족(구직포기자)을 지원하는 것이므로 일하는 고졸 청년이 참여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고졸근로빈곤 연구를 시작했다. 이 청년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직접 보기 위한 것이었는데, 역시나 매우 취약한 현실에 있었다.”
-2009년 이후 대학진학률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지만, 청년정책은 여전히 대졸 취업준비생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고졸 청년층의 소외가 심각하다. 청년정책에 이 흐름이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 인문계 학생들은 거의 다 대학을 갔고, 실업계 학생들은 거의 다 취업을 했다. 그런데 최근 인문계 학생들 가운데 가정형편으로 대학진학이 좌절되거나, 어렵게 대학을 진학해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점차 많아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실업계는 본래 취업이 목적이므로 진로이행 정책들이 발달했지만, 인문계는 오리무중의 상황이 됐다.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이 고졸로 연결되고, 고졸은 다시 생계문제를 겪는다. 불평등이 집약된 문제인 것이다. 주요 청년정책 의제가 대졸자 중심으로 짜여있을 수밖에 없던 것은 이러한 청년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 비교적 최근이고, ‘대졸자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문제의식에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고졸 워킹푸어 문제는 고졸이라는 특수성 자체보다는 모든 사회 문제가 집약된 결과물로 해석돼야 한다.”
-예전에는 지방 전문대라도 빚을 내서 갔지만, 대학 비진학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일본 사회를 보자. 일본은 학력 격차가 우리보다 심하다. 특정 명문대를 가지 않는 이상 아예 가지 않는 게 낫다. 그 결과 니트족이 대졸 청년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최저임금이 한국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에 살 만하다. 후리타족(취업하지 않고 알바만으로 생계를 잇는 청년들)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활력 자체가 떨어지는 건 결국 마찬가지다. 한국은 주거비와 물가는 일본만큼 높은데 노동소득은 낮아 훨씬 상황이 안 좋다. 그래서 저임금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들이 빈곤해질 확률이 매우 높고, 20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30대, 40대에 가서 더 가난해질 것이다. 현재 20, 30대의 1,000만 인구는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졸 워킹푸어들은 정부 지원 정책을 잘 모르고 어려워한다. 정책홍보 실패의 원인은.
“예컨대 취업성공패키지의 타깃층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이다. 이들에게 정부 정책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기가 쉽지 않다. 경제 취약층이 가진 네트워크가 굉장히 협소하기 때문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부족하다. 이들의 정책진입을 위해선 취업에 버금가는 매력적인 유인책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입소문이 난다. 청년두배통장 정책도 계속 참가자 미달이었는데, 올해 처음 초과했다. 입소문의 효과다. 좋은 정책은 반드시 입소문이 나고 홍보가 된다. 대신 생계 유지를 위한 당장의 일자리를 포기할 만큼 큰 혜택이 커야 한다.”
-고졸 워킹푸어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방법이 있다면.
“프랑스에 미시옹 로칼(Mission Locale)이라는 조직이 있다. 프랑스 전국에 450개 정도의 지부가 존재하고, 총 1만3,000여명 정도가 일하는 매우 큰 규모의 조직이다. 이 조직은 특히 취약 지역에 많이 위치해 어려움에 처한 프랑스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방문한다. 수당도 주고, 상담 및 교육, 지역 일자리에 인턴십 연계 등을 지원한다. 우리도 이런 공간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국가적으로 청년지원센터를 점조직 형태로 형성하면 좋을 것이다. 고졸 워킹푸어 청년들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고립된다. 우리 센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은 10명 내외의 청년들이 소모임을 꾸려 고립감을 벗어나게 해주는 ‘어슬렁 반상회’다. 고립감을 탈피해야 비로소 교육이 가능하다. 밭을 갈아야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것처럼 시스템을 깔아놔야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고졸 취업정책은 실업계 학생들을 초점으로 맞춰져 있다. 인문계 고졸자들을 위해 어떤 정책적 변화가 필요할까.
“현재 인문계고에 대해 진로탐색 교육을 더욱 강화하자는 논의가 있다. 그러나 그런 교육을 받고 졸업한다고 바로 진로이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3년 동안 진로교육을 받고 IT계열에서 종사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산업구조상 바로 괜찮은 직장을 찾기는 어렵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사회 진입 초기단계를 지원해주는 ‘진입 정책’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진로교육을 담당하고, 갭이어가 됐든 청년수당 같은 정책들을 포괄해서 지원하든 학교를 졸업한 뒤 사회에 나오는 과정을 돕는 정책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서울시가 진행하는 청년수당을 고졸 워킹푸어를 포괄할 수 있도록 수정한다면.
“지금 진로이행기 청년들은 바로 취업도 어렵거니와, 스펙을 쌓기 위한 비용도 많이 들고, 이를 위해서는 알바도 많이 해야 하고, 그러다 결국 자신의 진로 찾기에 실패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그래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어주자는 것이 청년수당의 기본 취지다. 그런데 고졸 청년들에게 대입하면 적용이 잘 안 된다. 그들은 대개 생계를 위해 당장 취업하고 보는 ‘묻지마 취업’을 한다. 고졸 청년들의 사회 진입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일부 있지만 조금 더 높은 소득과 진로설계 경험을 보장해주는 정책으로 확장해야 한다. 진로탐색 기간에 최소한으로만 일해도 될 만큼 소득과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대졸 청년층에 6개월이라면 고졸 청년들에게는 1년으로 지원기간을 늘린다든지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청년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진로탐색과 취업알선 단계 이전에 네트워크 형성부터 해야 정책 효과가 있다. 더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소득보장이 뒷받침 돼야 한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다른 지자체들의 청년수당은 참여자 미달인 반면 서울시 청년수당은 현재 경쟁률이 1.5 대 1 정도인데,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서울시의 정책 설계에 참여해 다른 지자체보다 진입장벽을 낮췄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청년문제는 유사 이래 최초의 사태다. 그러므로 이전 세대가 해법을 내놓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수요자 중심으로의 전환이 없다면 청년정책은 결국 돈만 쓰고 효과는 없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오희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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