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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가면 벗은 우상

입력
2016.10.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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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과 최태민 부녀의 주술적 관계

중세적 정신 세계로는 21세기 못 이끌어

국민은 속지 말고 국정농단 반복 막아야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ㆍK스포츠재단 의혹 확산에 맞춰 개헌을 전격 제안했을 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커 폐해가 많으니 개헌을 통해 바로잡으려 한다는 뉘앙스가 교묘하게 흘렀다. 그러나 온갖 권력을 휘두르며 제왕적 대통령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부총재 시절의 박 대통령을 두고 정두언 전 의원이 “제왕적 부총재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했듯 제왕적 대통령 박근혜는 오래 전부터 예견됐다. 그런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배신의 정치’라는 말을 써가며 여당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을 공개 비난한 것이다. 두 손 모아 잘못을 빌며 용서해 달라고 간청한 유승민 의원을 매몰차게 쫓아낸 것은 문명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제왕은 봉건시대의 산물이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원고를 고친다는 주장에 이원종 비서실장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펄쩍 뛰었지만 거짓 대답으로 드러났다. 그때 우리가 깨달은 것은 이 시대가 이성과 과학을 따르는 근대가 아니라 주술과 미신이 지배하는 봉건시대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박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관계다. 어머니를 잃고 슬픔에 잠긴 20대 중반의 박근혜에게 최태민이 “어머니가 현몽해서 돌봐 주라고 했다”는 편지를 보내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주술적이다.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이 남동생 박지만과 함께 사기꾼 최태민에게서 언니를 구출해 달라는 탄원서를 낸 것이나, 박지만이 “누나는 최순실(최태민의 딸), 정윤회(최순실의 전 남편) 이야기만 나오면 최면에 걸린다”고 한 데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최순실에게 얼마나 깊이 빠져들었는지 알 수 있다. 유사 종교에서 헤매는 사람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피폐하고 허황한지는 동서고금에서 수도 없이 목격된다. 박근혜 대통령만 예외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 그의 정신세계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보면 박 대통령은 육신은 21세기에 있지만 정신은 중세에 머무는 영육불일치 상황이다.

문제의 뿌리는 대한민국이 이렇게 근대적 정신세계에 이르지 못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사실이다. 밤낮없이 죽기살기로 일해 산업화를 이루고도 그 공로를 자기 자신이 아니라 독재자에게 돌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딸까지 떠받든 것은 우리 사회 또한 근대적 이성과 과학이 아니라 봉건적 사고의 지배를 받았다는 뜻일 게다. “아버지 어머니 잃은 박근혜가 불쌍하다”거나 그의 아버지, 어머니가 제 고향 사람이라는 게 선택의 이유라면 중세적 주술이나 미신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탄생한 정부가 경제, 안보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전근대적 정신세계로 21세기를 이끄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김태형 심리연구소함께 소장에 따르면 이런 박 대통령을 보수세력이 정권 연장의 도구로 불러냈다. 잘난 정치인, 관료, 언론인, 교수들은 그 얼굴에 가면을 씌웠다. 그러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남북화해의 상상력을 거부했으며 방송을 장악하고 우상화를 재촉했다. 대신 세월호 유족과 개성공단 사람들에게는 모질고 냉정했다. 이번 일의 책임을 물어 어떤 식으로든 박 대통령의 거취에 변화가 있어야겠지만 그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이들 또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쯤에서 만약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지금 어떻게 지낼지 상상해본다. 최순실과 “언니” “동생”하면서 옛 일을 떠올리고 하얗게 웃고 있을 것이다. 최순실이 국정을 흔들 일도 없고 국가가 휘청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은 국정 농단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무를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그러자면 봉건적 주술이 아니라 이성과 과학을 따르는 사회, 가면 속 맨 얼굴을 알아챌 수 있는 사회, 그래서 지배층의 독점 욕구를 물리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역사는 비극적으로든, 희극적으로든 반복한다는데 이번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불쾌한 경험이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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