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떠난 뒤 쏟아져 나온 여러 추억담 가운데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YH무역 노동자 사건이었다. 알려진 대로 이 사건은 가발을 만드는 YH무역이 창업자의 외화 빼돌리기와 무리한 경영 확장 등으로 경영난에 부닥쳐 폐업하면서 일어났다. 살길이 막막한 20대 전후의 여성 노동자들이 계속 일하게 해달라며 당시 제1야당이던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자 이틀 만에 경찰이 이를 강제 진압한 것이다.
YH무역 노동자들의 요구는 외화 도피 혐의로 꽤 큰 사회문제까지 되었던 당시 회장을 소환해 조사하고 회사를 은행관리기업으로 지정해 계속 운영해달라는 것이었다. 신민당사 주변에 몰려든 경찰 때문에 노동자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죽음을 불사하겠다고 흥분하자 YS는 사고를 막기 위해 경찰 철수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마포경찰서 정보과장의 따귀를 때렸다. 신민당원들과 경찰의 몸싸움도 벌어졌다.
폭력이며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서울시경국장은 농성 진압이 ‘법치’라며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및 국가 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거론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경찰은 그런 법을 앞세워 국회의원, 신민당원, 기자 가릴 것 없이 “까불면 마구 죽인다”며 주먹, 몽둥이, 벽돌로 때렸다. 새벽 2시 2,000명 가까이 투입된 ‘작전’에서 자기들끼리도 분간이 안돼 치고 받다가 “나는 치안국 직원이다”고 소리치면 멈추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21세 여성 노동자가 떨어져 숨졌다. 당시 경찰은 투신자살이라고 했지만 30년 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재조사에서 추락사로 정정됐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희생이었다.
누구나 폭력 없는 세상을 원하지만 그건 어쩌면 가망 없는 바람이다. 폭력은 결코 환영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삶의 도처에 존재한다. 그리고 YH무역 사건에서 보듯, 폭력이 나쁘다는 추상적인 당위만으로는 그 폭력을 부른 갈등의 본질에 다가서기 어렵다. 그래서 문제 삼아야 하는 건 어떤 폭력이 더 나쁜 것인가이다. YH무역 사건의 경우 생존의 벼랑에 몰린 노동자들을 자극하고, 경찰관 폭행을 빌미 잡고 법을 방패 삼아 야당 당사에 난입한 ‘공권력’이야말로 단죄 받아야 할 폭력의 주체였다. 역사의 평가가 그렇다. 경찰도 무리했지만 YH무역 노동자들 역시 과격했다고, YS가 경찰 뺨을 때린 건 용서할 수 없는 폭력이라고 지금 누가 말하는가.
‘민중총궐기’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두 차례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첫 시위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장대를 휘두르며 경찰버스를 파괴하려는 시위대를 두둔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일찌감치 설치한 차벽으로 시위대를 자극한 건 누구인가. 일부 시위대를 조준해 물대포를 쏴서 사경을 헤매게 만든 건 누구이고, 이 모든 것을 “법치”라는 건 또 누구인가. 이를 빌미로 시민의 집회ㆍ시위할 권리를 제한하려 드는 건 누구인가. YH무역 사건이 떠오른다.
그것만이 아니다. 더 크고 무서운 폭력은 따로 있다. 국민의 과반수가, 교사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민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하는 것도 폭력이다. 노사정위원회의 합의 정신과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 노동 관련법 개정안을 ‘개혁’으로 포장해 입법하려는 행태 역시 폭력이다. 수만 명의 시민이 휴일을 반납하고 계속 모이는 건 이런 거대 폭력이 우리 삶을 올가미처럼 죄어 들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5일 시위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그러나 시위 현장에 폭력이 없었다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안도할 수 없다. 공권력의 거대한 폭력은 도처에 있고 시민은 그런 거대 폭력에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제 막 저항을 시작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김범수 여론독자부장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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