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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적폐수사와 ‘법리’

입력
2017.12.11 12:5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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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에 의한 지배’를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와 ‘법에 의한 지배’를 내세우는 법치주의는 상호보완적 관계임과 동시에 상호갈등적이다. 한국사회에서 법치를 강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법리’라는 단어는 사법의 고유한 영역과 관련이 있다.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로서 법을 적용ㆍ집행하는 과정의 절차적·형식적 특수성을 필요로 한다는 함의를 지닌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리라는 말은 절차적 전문 영역을 넘는 신성불가침의 본질적 원리라는 의미로 과장되게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즉 법리는 민주주의의 규범을 초월하는 상위개념으로 곧잘 상정되곤 한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16년 기준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176개 조사 대상국 중 52위로 15단계 추락했고, OECD 35개 회원 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민주주의는 법치에 의해 일상적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부패한 정치’가 사법 권력에 의해 심판되는 현상을 피할 수는 없다. 문제는 검찰과 법원 권력은 선출되지 아니한 권력이라는 데에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일상적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상호보완의 측면이 훨씬 강하다. 그러나 역사성을 띠거나 인민의 다수 의사가 반영되는 사안에서 갈등이 나타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법원이 ‘국정농단’ 혐의자들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거나 구속적부심에서 인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구속영장 기각은 범죄의 유ㆍ무죄를 명시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장기각이 곧 무죄로 인식됨으로써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보는 프레임에 결과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국정농단’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고질적으로 이뤄져 왔음이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가 보수정권 보복을 위하여 검찰 권력을 장악·조정한다는 혐의는 아직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치보복 프레임은 허구다.

지난 보수정권의 대통령과 핵심 권력그룹의 헌법유린과 국기문란에 대한 진상 규명과 수사성패는 검찰에 달렸다. 헌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사유화하여 주권자를 배신한 공적 권력기구에 대한 조사와 진실 규명은 역사성을 띤다. 따라서 구체제를 청산하고 수구적 기득 관행을 타파하기 위한 적폐청산 수사는 일상적 수사와 다른 역사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 헌정농단 혐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다. 법원은 법리에 따라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농단과 반헌법 행위의 척결이라는 시대적 당위가 사법권력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새로운 과제다.

불구속 수사 원칙에도 불구하고 영장기각이 적폐청산 수사에서 어떤 맥락을 갖는가 하는 역사철학적 성찰은 법리적 판단과 같은 무게로 존중돼야 한다. 법원의 영장기각이 오로지 법리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합리화될 수는 없다. 법리가 민주적 규범과 가치 위에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돼야 하나 그에 대한 비판 또한 국민의 몫이다. 법리는 민주적 원리를 초월하는 성역이 아니다. 법 체계와 법률적 지식에 바탕하고 있는 법리도 민주주의 규범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음은 물론 주권자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 따라서 법리로 표현되는 전문 영역이 민주주의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인민주권을 능가할 수 있는 어떠한 논리도 민주주의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권자의 요구에 의해 대의기구인 국회가 탄핵을 의결한 지 1년이다. 일부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이 내세우는 정치보복 프레임과 적폐수사 피로감은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행태다. 법리에도 시대적 당위에 대한 숙의가 묻어나야 한다. 해방 직후 친일세력에 의해 해체된 반민특위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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